#티비와 관짝

세하
세하 ·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잘하는걸 해라.
2023/07/18

64인지 배불뚝이 브라운관을 가진 공룡만한 티비는 서울에 다녀온 3일 사이 끝내 죽었다. 
죽은 녀석에겐 옅은 체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죽은 녀석은 관짝처럼 거실 한복판에 버티고 있었다. 
무서웠다. 
나와 9년을 휘돌아 다녔던 녀석이었다. 
혹시나 해 급히 AS 기사를 불렀다. 
녀석을 고치러 온 AS 기사는 63인치 브라운관 티비인 녀석의 커다란 몸피를 신기해만 할 뿐 먼지를 털듯 간단 명료하게 손을 놔 버렸다. 
녀석은 지친 것이 자명한데 아직 죽은 게 아닌데... 
단종 돼서 부품 하나가 없다고... 
녀석을 살릴 수 없다며 죽음을 선고한 채 가버렸다.
순간 아주 짧았지만 나도 안도했다. 
그래놓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미안한 거야라고 생각했다. 
녀석은 어쩌면 스스로 죽었는지도 모른다라고까지 생각이 들었다. 
백번 이해했다.
쉬고 싶었을 거야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느닷없는 무섬증에 몸이 떨렸다. 
영혼이 빠진 녀석에게 휘엉휘엉 울음소리가 났다.

돌아가신 시아버지는 병풍 뒤에서 며칠을 관짝에 반듯이 누워 계셨다. 
마루를 통해야 안방으로도 작은방으로도 사랑방으로도 부엌으로도 들어갈 수 있는 모든 길의 한복판에 조용하고 단호히 누워 계셨다. 
며느리들은 무섭다고 뒷마당으로 돌아 부엌 출입을 하며 손님을 치렀다. 
마루를 통과해 다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유난히 나를 이뻐하셨던 분이 돌아가셨다. 
나를 제외한 누구도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평생 가족을 챙기지 않았던 그의 삶은 죽음에 이르러 그가 했던 것처럼 가족 모두에게서 내팽개쳐졌다.
식구들 누구도 소리를 내 울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슬픔이 아닌 다행이었다. 
다행인 죽음. 끝이 나 버린 증오들이 범벅이 된 울면 절대 안 될 것 같은 침잠된 분위기는 장례식 내내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울고 싶었다. 나는 그를 사랑했고 그도 나를 사랑했다. 
나만은 울어 드려야 할 것 걑았다.
나는 당신이 없는 게 너무 슬프다고 목이 터지도록 울고 싶었다. 
누구도 울지 않는 상갓집에서...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세하표 드라마]를 세상에 내놔야겠다 결심했습니다. 저의 시청자가 돼주시겠습니까?
14
팔로워 27
팔로잉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