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호
노경호 · 연구자
2024/04/27
먼저 다시 한 번 자세하게 글을 써주신 점 감사합니다. 저 역시 이렇게 글을 주고받으면서 저의 의견이나 해석을 벼릴 수 있어서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많이 배우기도 하였고요. 다만 이제 재반론을 기대하거나 기다리기보다는 말씀해주신 것에 저의 의견을 보태는 것을 끝으로 지금의 논의를 이렇게 주고받는 것은 마무리하면 어떨까 제안드립니다. 이미 원래 하려던 이야기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나오기도 했고, 이쯤되면 서로의 견해에 대한 확인은 충분히 된 셈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1. 플라톤 해석 평가
첫 번째 플라톤을 회의주의로 보냐는 것에 대해서는, 그럼 저는 제 표현 내지 의견을 수정하여 플라톤이 "감각 세계에 대해서는 형상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자들의 수준에서 성립하는 정도의 앎이 없다"는 아주 기본적인 테제만을 제 주장인 것으로 남겨놓겠습니다. 이는 곧 감각 세계의 어떤 것도 완벽하게 '그것이 그것인 바'가 아니라는 것과 같은 말이고, 그래서 우리는 어떤 좋은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 진짜 좋은 것인지 좋지 않은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캐묻는 방식으로 검토해야 한다, 정도의 매우 소크라테스-플라톤적인 윤리적 주장을 포함할 것 같습니다. 제 원글에서는 단락3의 제목이 "플라톤의 회의주의"에 더해 "물음표"가 하나 붙어있는데, 바로 이런 함의를 모두 포함해 붙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물음표였습니다.

(물론 해석상 아름다운 결론은 이데아에 대한 앎이 감각 세계에서의 좋은 판단을 낳는 것이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잘 해명이 안 된 상태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뿐 아니라, 연구계에서도 납득할 만한 해석이 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앎-판단이 연역을 통한 도출 관계라고 보기에는 그 둘 사이에 존재론-인식론적 위계가 이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전 글에서 "그래도 이데아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랑 이데아 따위를 상정하지 않고 사는 사람 사이에는 그래도 삶의 태도상 차이가 있지 않겠나" 뭐 이런 식으로 풀어보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2. 지속
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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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대철학과 정치철학을 공부합니다; 번역: <정치철학사>(공역, 도서출판길, 2021), <자유주의 이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23); 신문 <뉴스토마토> 시론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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