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영화 수난사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12/21
우리 역사에서 이순신의 이름은 실로 ‘압도적’이다. 혹자는 대단한 ‘이순신빠’였던 박정희 대통령의 과잉과 비약으로 ‘성웅화’되었다고 얘기하지만, 박정희가 태어나기 훠월씬 전부터 이순신은 한반도에서 우리 말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역사 스타’였다. 조선 시대도 마찬가지다. 이순신은 덕수 이씨다. 이순신의 집안도 원래는 문반(文班) 가문이었거니와 덕수 이씨는 자그마치 율곡 이이를 배출한 집안이었다. 그런데 이순신 이후 충무공파 덕수 이씨 후손들은 대부분 무과로 돌게 된다. “충무공의 후손이면 장군이 돼야지!”하는 기대(?)가 율곡의 영향력을 가배얍게 덮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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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종전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좌수영 졸병들이 세운 타루비부터, 소문난 이순신빠였던 숙종이나 정조는 물론 1930년대 충무공 유적지가 후손들의 빚 때문에 일본인에게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합심하여 돈을 모아 그 위기를 넘겼던 2만여명의 조선인들까지, 그리고 한국사에서 존경하는 인물 부동의 1위로 이순신을 수십 년째 꼽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인들에게 이순신의 이름은 여전히 높고 크고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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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이니 그와 관련된 예술 작품이 아니 나올리 없다. 신채호, 이광수, 최남선, 이윤재, 이은상, 박태원, 그리고 최근의 김탁환, 김훈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문장가들이 이순신을 소재로 삼았고, 그 일생을 탐구했으며 그 외에도 이순신의 불가사의한 생의 매력을 부각시키는 저술, 공연, 드라마 콘텐츠들이 즐비하다. 개인적으로는 1980년대 초반 방송된 <임진왜란>에서의 이순신이 매우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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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충무공 숭상(?)의 역사에서 유독 영화 쪽은 그리 도드라진 대목이 없다. 심지어 <명량> 이전에는 “이순신을 소재로 하면 망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어두운 징크스가 있었다. 그 불운한 역사의 시작은 유현목 감독의 <임진왜란과  이순신>이었다. 개봉은 1962년이었지만 3년 전부터 기획되고 주인공 모집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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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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