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연애 - 갑과 을

김지용
김지용 인증된 계정 · 어쩌다 정신과 의사입니다.
2024/03/30
내 마음을 지키는 수문장들을 뚫고 연애가 시작되어도, 봄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진료실에서는 온갖 혹독한 연애 이야기들을 듣는다. 그 중에서도 자주 듣는 이야기는 ‘갑질’이다.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갑질은 역시나 연애 관계에서도 자주 보이는데, 나는 수많은 ‘을’들을 만났다.

A는 이별 후의 우울감으로 인해 병원을 찾아온 20대 여성이었다. 내가 듣기에 A는 매우 착한 여자친구였다. 항상 상대방의 의견과 감정에 맞춰 행동했다. 마찰이 생길 만한 상황에서는 먼저 사과했고, 사귀는 몇년간 화 한 번 제대로 낸 적 없었다. 다른 직장에 다니는 남자친구의 일을 상당히 도와주기도 했다. 이런 일들을 당연하게 부탁한 남자친구 자신은 그 시간에 놀러 다녔다. 남자가 다른 사람을 몰래 만나던 일이 발각되며 그들의 연애는 종결되었는데, 그 마지막 순간까지 A는 화를 내지 못했다. 평소 모습대로.

안타깝게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A와 같은 연애를 한다. 그런데 계속 듣다 보면 묘하게 공통적인 이야기가 있다. 갑질의 주인공인 상대방이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변해갔다는 증언들이다. 무슨 이유일까? 이들만 찾아 다니는 지킬 앤 하이드가 있는 걸까? 그러고 보면 그들의 진료실에서의 모습에서도 묘하게 공통적인 부분들이 있다. 이 분들이 내게도 매우 착하다는 사실이다. 공손한 말투는 기본이고, 매번 진료에 일찍 와서 기다리고, 내가 마실 음료수를 자주 사오기도 하며, 내 말에 토 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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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팟캐스트 채널 '뇌부자들'을 운영하고 있으며, '어쩌다 정신과 의사' 책의 저자입니다. 북팟캐스트 '서담서담'의 멤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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