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자들의 꿈, 백지 상태에서 언어가 탄생하는 과정을 관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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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ist96 · 호기심 많은 기후생태활동가이자 한의사
2023/02/13
제네바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을 만난다. 또 가정 내에서 쓰이는 언어가 아주 많은 가족도 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엄마의 모어는 한국어, 아빠의 모어는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 일본 유학 중에 만난 둘 사이에서 주로 쓰는 언어는 일본어, 작년까지 독일에서 살던 아이들이 가장 편하게 쓰는 언어는 독일어, 현재 사는 곳은 프랑스어권이라는 식.) 한국어 학생이나 다문화 가정의 한국어를 관찰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지난 주, 나 할머니 만났어. 선물 할머니 줬어."
   
여러 언어를 쓰는 가정의 열 살 된 어린이가 나에게 한 말이다. 한국어 학생들의 말투도 비슷하다. 한국어만 주로 쓰는 어린이라면 아마도 '지난 주에 나는 할머니를 만났어요. 선물을 할머니께 드렸어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들은 복잡하고 다양한 어미와 조사, 높임법의 특수 어휘 등을 생략하여 핵심 의미 단어 위주로 말하고, 다른 언어를 섞어 쓰기도 한다.
   
예: 엄친(嚴親)께서는 이만큼씩이나 잡수셨겠더군그려. -> I think 아빠 this much 먹었어.
   
이렇듯 외국어 화자들의 한국어는 문법 요소를 극도로 줄인 피진어의 특성을 담고 있다. 이러한 언어의 만남이 계속되면 언젠가는 한국어 기반 피진을 쓰는 어린이들에 의해 한국어 기반의 새로운 크레올어가 탄생할 수도 있겠다.
   
언어의 탄생을 목격할 수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7만년 전으로 돌아가 문법 언어가 탄생하는 순간을 지켜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린이들에게 문법 언어를 창조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어른이 개입하지 않고 어린이들만 언어가 없는 상태에 두면,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른이 어르고 달래며 양육하지 않고 어린이들끼리 고립, 방치하고서 지켜보는 잔인한 실험을 수행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 놀라지 마시라. 그런 비인간적인 실험이 진짜 존재했다. 
   
13세기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시칠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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