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와 존경을 남기고 떠난 기타리스트 제프 벡

홍형진
홍형진 인증된 계정 · alookso 에디터
2023/01/13
출처: 연합뉴스

별이 졌다. 식상하고 고루한 표현임을 안다. 그러나 달리 말할 도리가 없다. 그는 정말 별이었다. 한낱 왁자지껄한 스타가 아니라 고고하게 빛나며 이정표가 되어준 별. 
   
1월 10일 기타리스트 제프 벡이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부음을 듣자마자 거대한 상실감이 몰려왔다. 그동안 추앙해온 많은 기타리스트 중에서도 각별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를 만남으로써 나는 비로소 경이와 존경의 의미를 알게 됐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경이

   
2010년 3월 20일. 그가 첫 내한공연을 가진 이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부푼 마음으로 싱글벙글 웃으며 공연장에 들어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웃음기를 깨끗이 잃었다. 그날 내가 만난 건 단순히 끝내주는 공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미처, 어쩌면 감히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였다. 
   
모든 예술가는 각자의 우주를 품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단언컨대 개소리다. 그런 수사의 대부분은 빈약한 예술 세계를 포장하기 위한 사탕발림, 혹은 자신의 미천한 감성이나 필력을 숨기기 위한 연막탄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정수라고 할 만한 게 있을 땐 그냥 그걸 이야기한다. 별달리 느낀 게 없으니까 저렇게 뭉뚱그리는 것. 
   
하지만 나의 이 삐딱함은 제프 벡이 첫 음을 연주하자마자 와르르 무너졌다. 내가 속한 곳과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어떤 거대한 창이 날아와 내 심장 한복판을 그대로 꿰뚫어버리는 기분이었다. 이게 무슨 판타지나 무협 같은 표현인가 싶겠지만 정말 그랬다. 단숨에 얼어붙다시피 했던 그 충격은 13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남은 생애에 다시 못 느낄 감정임을 확신한다. 나는 그날 정말 우주를 만났다. 그만이 품은 독자적인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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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설가로 등단했지만 다른 분야 글쓰기에 치중해왔다. 문화예술, 금융, IT 업계에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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