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참척 일기, 글쓰기를 통한 재탄생

유창선
유창선 인증된 계정 · 칼럼니스트
2023/12/10

한국의 롤랑 바르트, 박완서의 애도일기

 소설가 고(故) 박완서는 유난히도 아픈 내면의 고통을 겪었던 작가이다. 사랑했던 가족들의 잇따른 죽음은 그녀를 깊은 고통 속에 몰아 넣었다. 박완서는 6.25 전쟁 때 오빠를 잃었고, 남편을 폐암으로 먼저 보냈으며, 바로 뒤에 아들을 사고로 잃고 말았다. 그래서 그의 여러 작품들에는 가족을 잃은 아픔과 고통들이 담겨있다. 


 오빠의 죽음이 낳은 전쟁 트라우마 

박완서 보다 열 살 위였던 오빠는 6.25전쟁 때 죽었다. 그녀와 오빠의 우애는 각별했다. 서로가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박완서는 회고한 바 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녀에게 그는 오빠인 동시에 아버지였고 우상이었다. (박완서, 「나에게 소설은 무엇인가」, 박완서 외, 『우리 시대의 소설가 박완서를 찾아서』) 

그런 오빠를 잃었던 사연은 「엄마의 말뚝2」에 나온다. 오빠는 해방 후 한때 좌익운동에 가담했다가 전향한 적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6.25 직후 서울을 사수할 것이라는 방송만 믿고 피난 기회를 놓쳐 남하를 못하고 적치하의 서울에 남은 걸 극도로 불안해 했다. 만 석달 만에 서울수복이 이루어지고 세상이 바뀌자 가족들은 빨갱이 집안이라고 박해를 받았고 오빠는 끌려갔다. 돌아온 오빠는 이미 속속들이 망가져 있었다. 눈은 잠시도 한 군데 머무르지 못하고 희번덕댔고, 심한 불면증으로 몸은 수척했고 피해망상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깜짝깜짝 놀라고 사람을 두려워 했다. 다시 1.4 후퇴령이 내려지고 서울이 인민군 치하가 되었을 때, 오빠가 그 지경이 된 진상을 기어코 알고자 했던 보위군관은 바른 말을 하라며 오빠에게 총을 쐈고, 결국 오빠는 출혈로 인해 며칠 후 사망하고 말았다.
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 』 표지
박완서는 이 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오빠는 서서히 죽음을 당했다. 그것도 정신과 육체가 따로따로. 오빠가 완전히 죽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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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시사평론을 했습니다. 뇌종양 수술을 하고 긴 투병의 시간을 거친 이후로 인생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 문화예술과 인생에 대한 글쓰기도 많이 합니다. 서울신문, 아시아경제,아주경제,시사저널,주간한국, 여성신문,신동아,폴리뉴스에 칼럼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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