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속 문장 12 – 풍경이 나를 만졌어

천세진
천세진 인증된 계정 · 문화비평가, 시인
2023/09/04
아브라함 반 베르헴이 에칭 화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가 말한다. “사람은 늙어갈수록, 자신이 통과하는 풍경의 광채에서 몸을 빼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네. 바람과 세월에 닳고, 피로와 기쁨에 탄력 잃은 살갗, 갖가지 체모, 눈물, 땀방울, 손톱의 머리카락, 이런 것들이 마치 낙엽이나 죽은 나뭇가지처럼 땅에 떨어져, 두툼한 살갗 외부로 점점 더 빈번히 빠져나가는 영혼을 흩어지게 하지. 마지막 떠남은 사실상 흩어짐에 불과해. 늙어갈수록 나는 내가 도처에 있음을 느끼네. 이제 내 육체 속에는 내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나는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 두렵네. 내 살갗이 지나치게 얇아졌고, 구멍이 더 많이 생겼다고 느끼지. 난 혼자 중얼거리네. ‘언젠가 풍경이 나를 통과하겠지.’” 
- 『로마의 테라스』, 파스칼 키냐르, 송의경 역, 문학과지성사, 2002.   
출처-픽사베이
    멀리서 풍경을 바라보다가 마음에 드는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어떤 풍경은 마지못해 들어간다. 삶을 꾸릴 근거들이 도무지 좋아할 수 없는 풍경 속에 더 많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

   문 앞마다 화분이 놓인 골목이 있고, 냄새가 가득 찬 형형색색의 사물이 전시대에 놓인 시장이 있고, 높낮이가 다른 빌딩들이 숲을 이룬 거리가 있다. 마로니에가 그늘을 드리운 공원이 있고, 왜가리가 외...
천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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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순간의 젤리>(2017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풍경도둑>(2020 아르코 문학나눔도서 선정), 장편소설<이야기꾼 미로>, 문화비평서<어제를 표절했다-스타일 탄생의 비밀>, 광주가톨릭평화방송 <천세진 시인의 인문학 산책>, 일간지 칼럼 필진(2006∼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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