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짓의 시작
2023/11/05
내 미친 짓은 2018년 9월 30일에 시작되었다.
어떻게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느냐고? tvn 주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마지막 회가 방영된 날이기 때문이다.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간 이름 없는 영웅들의 유쾌하고도 묵직한 항일 투쟁사에 감초처럼 곁들여진 유진 초이와 고애신의 달달한 러브라인이 내 마음을 눅눅하게 만들었다.
“러브가 무엇이요?”
“총 쏘는 것보다 더 어렵고, 그보다 더 위험하고, 그보다 더 뜨거운 것이오.”
막 사랑을 시작한 두 사람의 대사가 귓전에 맴맴 도는데 끝이라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드라마를 찍을 수도 없으니 혼자서 서운한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어 과자 봉지를 입에 털어 넣으며 노트북을 켰다. 뭘 하겠다는 계획이나 의도도 없이 빈 문서의 하얀 여백 앞에 앉았다. 딱히 무엇을 써보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때까지 나는 일기는 물론이려니와 메모조차 하지 않고 살았다)
드라마의 여운을 붙잡고 싶었던 걸까. 빈 문서의 깜빡이는 커서를 옆으로 밀어가며 글자를 채워 넣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 일어난 일이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기에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다. 자판을 두들기다 보니 어느덧 두 시간이 갔고 A4 다섯 장이 채워져 있었다. 톨스토이 신이 내렸거나 하나님의 능력이 임재하지 않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평소대로라면 한 장은커녕 한 줄도 쓰는 데도 몇 번 멈칫거려야 맞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목적도 없는 글에 마구 글자들이 마구 솟아나왔다.
쓰고 나서 알았다. 내가 소설 비슷한 것을 흉내 내고 있었다는 것을. 마구잡이로 쓴 글을 남의 글 대하듯 낯설어하며 읽어보았다. 시대적 배경은 일제 강점기였지만 미스터 션샤인과는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밥을 먹기도 어려운 시절, 순애라는 열두 살 여자아이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읽고 나니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순전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그다음 날도 썼다. 이어서 쓰고...
철학, 문학을 전투적으로 공부하며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매일 읽고 생각하고 쓰는 생활을 하다보니 내가 축적하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