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좋게 말해줄수 있어?

레오
레오 · 디자인을 전공하고 광고쟁이였습니다
2022/04/11
흔히들 애도의 기간이라하는 3년,
거짓말처럼
3년이 지나니 아내를 생각하면서
서럽게 울던 시간이 잦아들었습니다
울음도 울음이지만
세상이 희미한 안개가 걷히듯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점점 걱정이 하나 늘었습니다
만약
어린녀석들을 두고
나 마저 아내처럼
세상을 떠난다면…
이제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인 
큰아들이 동생들을 데리고
이 세상을 살아갈수 있을까하는
공포감이었습니다. 

아내가
투병 중 너무 힘들어할때
‘만약
아내가 세상을 떠난다면…’이란 
가정을 해보았었습니다. 
그때 밀려온 공포는 태어나
처음겪는 공포였습니다. 
세상이 꺼진다는 표현을 처음 
쓰셨던 분의 마음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할 만큼…
정말
방안이 큰 구덩이가 되면서
싱크홀에 갑작스럽게 빠지는
느낌과 함께 앞이 아득해지는
몸서리를 경험하고는
무슨수를 써서라도
아내를 살려야겠다는 굳은 각오를
하게 되었었지요. 

그런데
‘아이들만 남겨놓고
만약 내가 죽는다면’ 이란 가정 역시
아내의 죽음을 상상한것 보단
덜했지만 
여전히 무서운 공포가 밀려왔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아이의 나이에 걸맞지 않는
주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중고등학생을 가르치듯
밀어붙였었습니다. 
뜻대로,
명대로 되지 않으면
말을 곱게 하지 않았고
군대처럼 아이들을 잡았습니다. 
겨우 5살, 초등학교 2학년,
초등학교 4학년의 어린 아이들을 말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죽는것도 하늘의 뜻이며,
모든걸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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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한 자연인으로서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잘살지도 그렇다고 못살지도 않았던 인생이었습니다. 그래도 미술대학은 홍대로 갔고, 광고대행사에서 원껏 크리에이티브도 발산해보고, 뜨겁고 절절한 연애도 했었고, 민간인으로는 미국 국방성 펜타곤에도 초대받아 가보았고, 결혼도 해보고, 아들 삼형제를 두고 살고 있으니, 이만하면 중간정돈 하지 않았나싶네요. 비록 광고디자이너지만 지역관광관련업무나 전혀 인연이 없던 토마토 브랜딩으로 농촌과 밀접하게 움직였던 수년, 지금은 또 다른 영역에서 삶을 살고 있으니 재미있는 인생이라 말할수 있겠네요. 아내를 사별하고 잘 못해주고 보낸것이 가장 가슴의 대못이구요. 아내를 통해 죽음이란 영역에 깊은 생각을 하게 된것도 뜻있는 인생이었다 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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