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훤
이훤 인증된 계정 · 시인. 사진가. ‘작업실 두 눈’.
2023/12/29
ⓒ정멜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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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이훤 "사랑을 대충하지 않는 사람"

시인이면서 작가이고, 사진가입니다

🤔 사진과 시를 함께 작업하는 장점이 있나요? 사진을 찍을 때 꼭 필요한 기술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사진가에게 꼭 필요한 자질도 알고 싶어요. (gogo119)

↳ 💁‍♀️ 이훤
사진과 시를 동시에 다루어서 어려운 점도 많지만요. (물리적 시간 부족, 전시와 출판을 병행하는 데 드는 품 등등). 성격이 다른 활자 언어와 시각 언어가 만나는 지점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아요. 이미지도 텍스트도 독립적으로도 충분할 때가 많지만요. 둘을 포개는 작업도 좋아합니다. 책이나 잡지 같은 출판물에서 두 언어가 관계 맺는 여러 방식에 관심을 가지며 탐구 중입니다. 탐구하다 보니 둘이 닮은 점들도 많이 보게 되고요. 자본과도 연결 지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소량 제작 가능한 아티스트 북 작업도 왕왕 하지만요. 치열하게 고민해 기성 출판 시장에 물성을 잘 다듬고 고민한 사진 책들을 내놓고 싶어요. 내년에 '난다'와 '마음산책'에서 출간할 사진 산문집 두 권이 지금 하는 고민의 결과물 될 것 같습니다.

좋은 사진가들이 가진 재능이 다 다른데요. 꼭 필요한 자질은 응시인 것 같습니다. 본능처럼 보고 있는 사람들 있잖아요. 주위를 향해, 타인을 향해, 모르는 풍경 앞뒤로, 잘 아는 지형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계속 주시하는 사람. 그들이 사진가가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말씀하신 사진기 안팎의 기술 뿐 아니라 작업이 향하는 화두, 사유, 시각 작업자로서의 아이덴티티가 되기도 하는 사진 재료, 질감 모두 보는 것에서 시작되고 결정되는 경우가 잦아서요. 훌륭한 사진을 많이 만나면서 그 가운데서 어떻게 구별된 시선을 갖을지 계속 고민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구도나 후보정 같은 기술의 영역을 함께 훈련해 나가시는 것도 물론 큰 도움이 됩니다. 익숙한 4:3 비율의 사진에서 벗어나, 찍은 사진을 여러 크고 작은 장면으로 잘라보는 것도 저에게는 유용한 놀이였습니다. 여러 화각의 프라임 렌즈를 바꿔가며 사용해 본 시간이 새 눈을 갖는 데 도움이 되었고요. 선호하는 작업 방식은 시절마다 바뀌기도 해서요. 어디에서 새 시선의 계기를 만날지 모르니 즐겁고 긴 탐구가 이어지길요.

🤔 교정•교열과 관련된 질문이 있습니다. 읽히는 책을 위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초고를 바라보고 수정하면, 처음 기획한 의도와 다른 느낌이 듭니다. 작업 후에는 내 글이었지만, 내 글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어요.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0123gyung)

↳ 💁‍♀️ 이훤
퇴고를 괴로워함에도 자주 하고 많이 하기 때문에 공감이 됩니다. 퇴고를 거쳐 완전히 다른 글이 되기도 하는 딜레마도요. 괴롭지요. 하면 할수록 글쓰기가 기술의 영역이라는 걸 가장 사무치게 깨닫는 게 퇴고의 순간 같아요. 쓴 글의 정수가 되는 부분을 잘라내지는 않았는지, 개성을 잘 지키며 다듬었는지 등은 혼자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퇴고하는 정도나 빈도는 달라지지만, 모든 작가에게는 눈 좋은 편집자와 동료들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쓴 사람은 본인 눈으로만 볼 수 있잖아요. 초고를 완성하면 저도 신뢰하는 이들에게 보내곤 합니다. 모두가 좋아해 주면 좋겠으나 텍스트도 취향을 타기 때문에, 구체적인 피드백을 부탁하며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슬아와 저는 거의 매번 서로의 초고를 읽는데요. 빈말은 하지 않되 좋았던 부분을 힘주어 말해주고, 힘에 부치는 날엔 이제껏 잘해온 것을 상기해 주려고 노력하고요. 이제껏 해온 작업의 맥락에서 어떻게 다가오는지 등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좋은 동료들을 찾으시길 바라보아요. 주변에서 찾기 어려우시면 글방이나 수업을 다니시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혹시 운문을 쓰실 마음이 생기시면 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서 열리는 수업에, 산문을 계속 쓰실 거면 안담 작가, 하은빈 작가 등이 강의하는 <무늬글방> 하미나 작가의 <하마글방> 양다솔 작가의 <까불이글방> 등을 추천해 드립니다!

🤔 일상 기록을 위한 글쓰기도 하시나요? 책 출판이나 글 게재를 위한 글이 아닌, 개인 기록을 위한 글도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miavivo)

↳ 💁‍♀️ 이훤
기록을 위한 글쓰기를 저는 분리하지 않는 편입니다. 의식적으로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는 시간은 만들고 있습니다. 쓰고 싶은 대상이나 사건이 생기면 나중에 잘 가공해 쓸 수 있게 메모장에 기록해 두는데요. 완전한 문장 형태일 때도 있고요. 단어나 키워드별로 써놓기도 합니다. 시간이 별로 지나지 않은 메모는 설익어서, 너무 오래된 기록은 생기를 잃어서 쓰지 못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식재료처럼 섬세하게 열어 보고 운영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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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예술대학에서 사진학 석사를 마쳤다. 『양눈잡이』 『우린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 『아무튼, 당근마켓』 등을 쓰고 찍고 『벨 자』(실비아 플라스) 『정확한 사랑의 실험』(신형철) 『끝내주는 인생』(이슬아) 등에 사진으로 참여. 
스튜디오 ‘작업실 두 눈’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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