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코드, 석양, 엠파이어 스테이트

액화철인
액화철인 · 나밖에 쓸 수 없는 글을 쓸 수밖에
2023/04/15
영화 ‘허영의 불꽃’ 중 가장 비싼 10초짜리 장면의 탄생 비화


    브라이언 드 팔마의 “허영의 불꽃”에 보면 극 중 팜므파탈인 마리아 러스킨이 탑승한 에어 프랑스의 콩코드가 JFK 공항에 착륙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깨나 보신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항공기 착륙 장면이야말로 장면 전환을 위한 너무나 흔한 장치다. 굳이 새로 찍을 필요도 없다. 게티 같은 스톡 자료에서 대충 찾아다가 넣고 여기에 자막으로 마카오, 홍콩, 리스본 뭐 이렇게 자막까지 달아주면 관객들은 아묻따 장소가 바뀌었구나 납득해버리니 지금도 많은 드라마/영화들이 자주 쓰는 클리셰다.

   그런데 문제는 “허영의 불꽃”의 그 10초짜리 콩코드 장면은 무려 8만 불이나 들여 생짜로 찍은 장면이라는 점이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그거 10초 보여주려고 우리 돈으로 1억 좀 넘게 쓴 셈인데, 원체 방만하게 예산을 집행했던 디지털 이전의 90년대 할리우드 영화 기준으로도 이건 좀 말이 안 되는 짓이었다. 이 어마어마한 돈질의 규모에 대해 피부로 와닿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영화의 예산이 4천7백만 불, 길이가 126분, 다시 말하면 초당 평균 6천 불 정도 썼다고 보면 되는데 제작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거액의 몸값을 받은 배우들이 하나도 안 나오면서도 10초 동안 초당 8천 불이 들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 장면을 감독한 사람은 드 팔마가 아니었다. 즉 영화 마케팅의 “얼굴 격인 탤런트들(billed talent)”, 주연배우나 감독이 전혀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영화 중에서 가장 비싼 10초를 당당히 차지해버린 이 장면의 뒷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특징 중 하나는 클리셰에 대한 극도의 혐오다. 뭐든 남들과는 다르게 색다르게 찍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감독이었다. 항공기 착륙 장면으로 장면 전환을 설명하는 뻔한 짓 같은 건 절대 할 리가 없는 감독이다. 그런데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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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광고를 하기 위해 미술사를 전공했다. 남다른 미술사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일반 역사를 배웠다. 젊은 척하는 광고 카피를 쓰고 늙은 척하는 평론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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