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6
이전 글들에서 학교 폭력은 피할 수 없고 예방하기 어렵다는, 다소 주제에 반하는 주장을 앞세웠지요.
이제 진짜 뿌리 뽑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할 차례가 됐습니다.
제목대로, 학교 폭력 피해자의 괴로움을 뿌리 뽑을 방법은, 정말로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합니다.
사고처럼 만나는 폭력을 백 퍼센트 피할 수는 없더라도, 피해자 측을 도와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꼭 적극적인 도움이 아니더라도, 작게나마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차고 넘칩니다.
피해자를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숫적으로 양적으로 비중이 늘어난다면, 결국 괴로움은 걷힐 것입니다. 인간은 행복하려고 사는 존재이니까요. 괴로움이 물러나면 행복함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겠지요.
여기서, '피해자'를 정확히 정의합니다. 당연히 피해를 분명히 당한 사람입니다.
맞학폭위 걸려서 1호 처분 받은 제 딸이 피해자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처분은 훨씬 무거웠습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은 2학기 내내 제 딸을 괴롭혔어도, 제 딸이 2학기 때 참다참다 쏘아붙인 말에 상처를 받았다면, 피해자라는 건 인정은 해 줘야죠. 공식 서류상으로 분명히 그렇습니다.
학폭위 사건이 진흙탕이 되면서 피해자와 가해자 양쪽 포지션에 모두 있을 수 있다는 건 저희가 겪어봐서 누구보다 잘 압니다.
하지만 선후관계는 분명히 딱 잘라 분석할 수 있으며, 올바른 담임(같은 학급 내 폭력의 경우), 올바른 목격자들이 있다면 쉽게 판가름납니다. 이게 권총 결투처럼 동시에 방아쇠 당겨서 발생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민사소송에서도 선후관계는 분명히 따집니다. 학교 폭력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다음과 같은 상황은 조금 복잡해집니다.
먼저 감정적으로 건드렸다 : 참다 참다 물리적 폭력을 휘둘렀다
이 경우 경중을 보통 물리적인 쪽에 두죠. 사실 어떤 일이 있다 해도 때리면 안 될 일입니다만....
요즘 폭력(학교만 아니라 직장내 폭력도 다 마찬가지)의 경우 물리적인 것보다 심리적인 폭력이 더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다는 건 이제 다들 아실 겁니다.
어쨌든, 경중은 학폭위 정식 심의위원회에서 각자 따질 일이고, 어찌 됐든 모두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건 맞습니다.
이 글에선 '순수 가해자'의 괴로움에 대해선 논하지 않겠습니다.
가해자가 괴로워봤자 가해자고요. 가해 사실이 걸리거나 공론화되어 괴로울 거면 애초에 가해를 하지 말았어야죠. (자제력은 지능 순. 그래서 전 정순신 아들이 수능으로 서울대 철학과는 갔지만 지능은 그렇게 높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위에 언급한대로 '가해자이면서도 분명히 피해자도 된다'면 이 글에서 말하는 '피해자' 해당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1. '너도 잘못했잖아?' 같은 말이나 시선은, 주변에서 절대 내려놓으세요.
저는 제 딸 가해자에 대해서, '그쪽이 먼저 오랜 세월 잘못했으니 내 딸한테 당해도 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제 딸이 저항한 건 맞고, 그거 자체로 그쪽에서 상처를 입었다면 잘못은 맞다는 입장이고요. (그러나 1호처분에 불복하여 행정심판은 갑니다만...이 얘긴 다른 글에서 다루기도 했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더 자세히 하겠습니다)
하지만 제 딸이 발끈해서 한 행동에 대해 비난하지도 않았습니다.
"잘했다고 할 순 없지만 충분히 이해한다" 정도로 담백하게 마감했어요.
쌍방이 다 잘못했다, 로 몰아가면 피해자들은 더 위축됩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고, 괴로움이 8개월 지속되었고, 학교 가기 싫고, 살기 싫다는 말을 지속하던 아이를 발끈한 일 하나로 비난해서 좋을 일은 없지요.
저야 엄마니까 당연한 거고, 다른 가족들, 제삼자들도 모두 이렇게 대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다행히도 저희 학교 측에서 제 딸을 이런 식으로 비난하는 선생님들은 없었습니다.
(솔직한 소감은, 다소 드라이하게, 철저히 제삼자적 관점에서 일처리를 하셨고요. 근데 그게 전 더 편하고 바람직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비난하지 않으며 조심히 존중하시며 절차를 밟았습니다. 저희 학교만 특별히 잘 굴러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생님들이 일정 주기로 옮기시는 평범한 공립중학교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과정에서 상처를 받지는 않았어요.
(좀 다른 이야기인데) 학폭위 신고하면 피해자가 무시당한다는 괴담에만 익숙하신 분들께 말씀드리자면
괴담은 문제가 되니까 확산되는 것이고, 전체 학폭위 사건의 99%는 이렇게 드라이하게 처리될 겁니다.
그러니 피해자가 위축될 필요 없이, 필요하면 '공식 절차'를 밟으라고 이전 글에서 권유드렸던 겁니다.
괴담 무서워서 학폭위 신고 안 하는 것은 교통사고 날까 무서워서 운전 안 하는 거랑 비슷합니다.
(물론 둘 다 정말 무서워서 안 할 수도 있죠. 개인의 선택은 존중합니다.)
2. 부모님과 가족들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항상 응원하고 (아이가 거부하지 않는 성격이라면) 안아주세요.
말로 응원도 가능하지만 가족끼리 편한 건 스킨십이죠.
여기서 하나의 전제가 있습니다. 네. '공식 절차'를 밟아야 가족끼리의 끈끈한 유대관계도 차라리 쉽게 형성된다는 말을 거듭해서 하고 싶습니다.
물론 공식 절차 없이 알아서 삭히기로 결정하더라도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런 일이 있더라도 너에겐 지켜줄 사람들이 있다, 네 편이 될 사람들이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일이 진행되며 제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엄마만 믿어!"였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마음이 많이 편안해진 건 분명합니다. 직접 말도 했었고요.
하지만, 피해자들의 가정형편과는 무관하게, 피해자들이 부모나 보호자와 이런 유대관계를 가지기가 어려운 케이스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자신의 피해 상태를 부모에게 숨기는 사춘기 자녀도 많을 거고요.
어쩔 수 없습니다. 부모의 의무는 자녀와의 대화입니다. 사이가 나빠도 대화는 해야 합니다.
적어도 요즘 무슨 문제가 있는지, 꼬치꼬치 대놓고 물어보지 않더라도 눈치를 챌 수 있는 스킬은 각자가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부모니까요.
3. 위(wee)클래스를 활용해 보세요.
요즘은 학교마다 상주하는 상담선생님들이 계십니다.
학교에서는 위클래스의 존재를 학생들에게 교육해서 아이들이 더 잘 알 겁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드리자면, 상담 전문가 선생님들이 학교에 상주해서 근무하고요. 호옥시 지역별 차이나 학교의 규모 때문에 개설되어 있지 않더라도, 같은 권역 내 가까운 다른 학교에 분명히 거점 센터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공교육을 받는 모든 학생들은 위센터나 클래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건 검색해 보세요. 내가 낸 세금이 이렇게 잘 쓰이고 있답니다.
아이들은 부모한테 하지 못하는 얘기를 상담 선생님에게 할 수도 있습니다.
정 부모랑 거리가 벌어져서 보듬어줄 여력이 없다면, 담임선생님, 혹은 아예 위클래스에 직접 연락해서 아이가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도 가능합니다.
담임선생님이 먼저 나서서 위클래스에서 상담 받도록 권유하는 케이스도 꽤 있다고 들었습니다.
피해자 아이의 고충을 들어줄 어른이 필요하다면, 이 방법도 고려해 보세요.
참고로 저는 학폭 진행하면서 전문가와의 상담 결과를 첨부하는 절차가 있길래, 교육청 학폭위 통해서 위클래스 상담을 공식 신청했습니다. (필수는 아닌데 하면 좋습니다. 이건 학폭위 절차에 대한 글을 쓰게 되면 그때 자세히 언급할게요)
4. 용서와 화해를 피해자에게 강요하지 마세요. 중요한 건 분리이고, 재발 방지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강요가 대세가 아닌 시대라 믿습니다. 그래서 다행입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용서와 화해를 무척 중요한 덕목으로 앞세웠고, 결국 그 효과는 피해자에게 강요되는 감정의 삭제와 가해자의 면죄부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용서와 화해를 '피해자가 원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사실....저는.....피해자들에게 그런 생각 애초에 접으라 말하고 싶습니다. (대세로 치는 보편적인 가치가 아니어서 죄송합니다만 할 말은 합니다.)
용서와 화해를 통해 '본인이 그렇게도 좋다면' 해야겠지만, 글쎄요. 과연 그렇게 좋을까요?
시간 지나고 나서 이불킥하거나 얹혀 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오히려 '사과 다 받아놓고 몇 년 지나 갑자기 왜 그러냐?'는 적반하장 및 비난의 빌미만 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인생 따로 사는 거고 마이웨이입니다.
더 글로리처럼 복수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서로의 시야에 보이지 않게 (그래서 공식 학폭위가 필요합니다. 반편성이 합법적으로 갈라지니까요) 각자의 삶을 잘 살면 되는 겁니다.
이번 생에서 연이 좋지 않은 건 서로 인정하고, 각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갈라서면 그만입니다.
보호자는 세상에 그지같은 인연보다 좋은 인연이 훨씬 많다는 걸 잘 알려주시고, 그런 인연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됩니다.
진짜 제대로 하는 복수는 가해자보다 잘 사는 겁니다. 실제로 그렇게 된 어른들이 우리 주위에 즐비합니다. (저 역시 따돌림의 피해자로 몇 년을 지냈지만, 지금은 제가 그때 가해자들보다 천배 만배 훌륭하고 즐거운 인생이라 자신합니다. 그들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재발 방지하는 세부 방법은 케이스마다 너무나 다르니 생략합니다.
5. 완전히 잊을 수는 없더라도, 지나간 일을 흐릿하게 지우고 앞으로 더 재미있게 지내는 길을 이끌어 주세요.
적어도 지금 이 글을 보시는 얼룩커 여러분은, 충분히 그런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아, 본인의 자녀한테 그러라는 게 아니에요. 자녀 없는 분들도 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전제 하에 하는 말입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이렇게 고정해 달라는 겁니다.
가해자를 시원하게 비난하는 것도 일면 피해자의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진짜 제삼자 분들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아 물론 정순신 아들은 저도 글마다 꼭 소환해서 활용 중이긴 합니다. 이슈의 핵심인데 어쩌겠습니까....)
그냥, "아, 너 그런 일이 있었어? 지금은 괜찮아? 괜찮다면 다행이다. 그럼 이제 나랑 뭐 하고 놀까?" 이 정도 반응과 함께 긍정적인 눈빛을 주면 되죠.
더 있지만 여기까지만 씁니다. 벌써 5천자군요.
이 글에서 학폭위 절차의 세부사항은 논외로 합니다.
그것도 물론 제목과 결부되는 중요한 키 포인트이자 스킬적인 콘텐츠인 건 맞습니다만
공식 학폭위를 가지 못하더라도 피해자는 피해자이고, 그들의 괴로움은 분명히 뿌리 뽑아야 할 일이니까요. 이번엔 어쩔 수 없이 원론적인 측면을 더 다루어 봤습니다.
이제 진짜 뿌리 뽑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할 차례가 됐습니다.
제목대로, 학교 폭력 피해자의 괴로움을 뿌리 뽑을 방법은, 정말로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합니다.
사고처럼 만나는 폭력을 백 퍼센트 피할 수는 없더라도, 피해자 측을 도와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꼭 적극적인 도움이 아니더라도, 작게나마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차고 넘칩니다.
피해자를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숫적으로 양적으로 비중이 늘어난다면, 결국 괴로움은 걷힐 것입니다. 인간은 행복하려고 사는 존재이니까요. 괴로움이 물러나면 행복함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겠지요.
여기서, '피해자'를 정확히 정의합니다. 당연히 피해를 분명히 당한 사람입니다.
맞학폭위 걸려서 1호 처분 받은 제 딸이 피해자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처분은 훨씬 무거웠습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은 2학기 내내 제 딸을 괴롭혔어도, 제 딸이 2학기 때 참다참다 쏘아붙인 말에 상처를 받았다면, 피해자라는 건 인정은 해 줘야죠. 공식 서류상으로 분명히 그렇습니다.
학폭위 사건이 진흙탕이 되면서 피해자와 가해자 양쪽 포지션에 모두 있을 수 있다는 건 저희가 겪어봐서 누구보다 잘 압니다.
하지만 선후관계는 분명히 딱 잘라 분석할 수 있으며, 올바른 담임(같은 학급 내 폭력의 경우), 올바른 목격자들이 있다면 쉽게 판가름납니다. 이게 권총 결투처럼 동시에 방아쇠 당겨서 발생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민사소송에서도 선후관계는 분명히 따집니다. 학교 폭력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다음과 같은 상황은 조금 복잡해집니다.
먼저 감정적으로 건드렸다 : 참다 참다 물리적 폭력을 휘둘렀다
이 경우 경중을 보통 물리적인 쪽에 두죠. 사실 어떤 일이 있다 해도 때리면 안 될 일입니다만....
요즘 폭력(학교만 아니라 직장내 폭력도 다 마찬가지)의 경우 물리적인 것보다 심리적인 폭력이 더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다는 건 이제 다들 아실 겁니다.
어쨌든, 경중은 학폭위 정식 심의위원회에서 각자 따질 일이고, 어찌 됐든 모두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건 맞습니다.
이 글에선 '순수 가해자'의 괴로움에 대해선 논하지 않겠습니다.
가해자가 괴로워봤자 가해자고요. 가해 사실이 걸리거나 공론화되어 괴로울 거면 애초에 가해를 하지 말았어야죠. (자제력은 지능 순. 그래서 전 정순신 아들이 수능으로 서울대 철학과는 갔지만 지능은 그렇게 높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위에 언급한대로 '가해자이면서도 분명히 피해자도 된다'면 이 글에서 말하는 '피해자' 해당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1. '너도 잘못했잖아?' 같은 말이나 시선은, 주변에서 절대 내려놓으세요.
저는 제 딸 가해자에 대해서, '그쪽이 먼저 오랜 세월 잘못했으니 내 딸한테 당해도 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제 딸이 저항한 건 맞고, 그거 자체로 그쪽에서 상처를 입었다면 잘못은 맞다는 입장이고요. (그러나 1호처분에 불복하여 행정심판은 갑니다만...이 얘긴 다른 글에서 다루기도 했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더 자세히 하겠습니다)
하지만 제 딸이 발끈해서 한 행동에 대해 비난하지도 않았습니다.
"잘했다고 할 순 없지만 충분히 이해한다" 정도로 담백하게 마감했어요.
쌍방이 다 잘못했다, 로 몰아가면 피해자들은 더 위축됩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고, 괴로움이 8개월 지속되었고, 학교 가기 싫고, 살기 싫다는 말을 지속하던 아이를 발끈한 일 하나로 비난해서 좋을 일은 없지요.
저야 엄마니까 당연한 거고, 다른 가족들, 제삼자들도 모두 이렇게 대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다행히도 저희 학교 측에서 제 딸을 이런 식으로 비난하는 선생님들은 없었습니다.
(솔직한 소감은, 다소 드라이하게, 철저히 제삼자적 관점에서 일처리를 하셨고요. 근데 그게 전 더 편하고 바람직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비난하지 않으며 조심히 존중하시며 절차를 밟았습니다. 저희 학교만 특별히 잘 굴러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생님들이 일정 주기로 옮기시는 평범한 공립중학교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과정에서 상처를 받지는 않았어요.
(좀 다른 이야기인데) 학폭위 신고하면 피해자가 무시당한다는 괴담에만 익숙하신 분들께 말씀드리자면
괴담은 문제가 되니까 확산되는 것이고, 전체 학폭위 사건의 99%는 이렇게 드라이하게 처리될 겁니다.
그러니 피해자가 위축될 필요 없이, 필요하면 '공식 절차'를 밟으라고 이전 글에서 권유드렸던 겁니다.
괴담 무서워서 학폭위 신고 안 하는 것은 교통사고 날까 무서워서 운전 안 하는 거랑 비슷합니다.
(물론 둘 다 정말 무서워서 안 할 수도 있죠. 개인의 선택은 존중합니다.)
2. 부모님과 가족들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항상 응원하고 (아이가 거부하지 않는 성격이라면) 안아주세요.
말로 응원도 가능하지만 가족끼리 편한 건 스킨십이죠.
여기서 하나의 전제가 있습니다. 네. '공식 절차'를 밟아야 가족끼리의 끈끈한 유대관계도 차라리 쉽게 형성된다는 말을 거듭해서 하고 싶습니다.
물론 공식 절차 없이 알아서 삭히기로 결정하더라도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런 일이 있더라도 너에겐 지켜줄 사람들이 있다, 네 편이 될 사람들이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일이 진행되며 제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엄마만 믿어!"였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마음이 많이 편안해진 건 분명합니다. 직접 말도 했었고요.
하지만, 피해자들의 가정형편과는 무관하게, 피해자들이 부모나 보호자와 이런 유대관계를 가지기가 어려운 케이스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자신의 피해 상태를 부모에게 숨기는 사춘기 자녀도 많을 거고요.
어쩔 수 없습니다. 부모의 의무는 자녀와의 대화입니다. 사이가 나빠도 대화는 해야 합니다.
적어도 요즘 무슨 문제가 있는지, 꼬치꼬치 대놓고 물어보지 않더라도 눈치를 챌 수 있는 스킬은 각자가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부모니까요.
3. 위(wee)클래스를 활용해 보세요.
요즘은 학교마다 상주하는 상담선생님들이 계십니다.
학교에서는 위클래스의 존재를 학생들에게 교육해서 아이들이 더 잘 알 겁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드리자면, 상담 전문가 선생님들이 학교에 상주해서 근무하고요. 호옥시 지역별 차이나 학교의 규모 때문에 개설되어 있지 않더라도, 같은 권역 내 가까운 다른 학교에 분명히 거점 센터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공교육을 받는 모든 학생들은 위센터나 클래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건 검색해 보세요. 내가 낸 세금이 이렇게 잘 쓰이고 있답니다.
아이들은 부모한테 하지 못하는 얘기를 상담 선생님에게 할 수도 있습니다.
정 부모랑 거리가 벌어져서 보듬어줄 여력이 없다면, 담임선생님, 혹은 아예 위클래스에 직접 연락해서 아이가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도 가능합니다.
담임선생님이 먼저 나서서 위클래스에서 상담 받도록 권유하는 케이스도 꽤 있다고 들었습니다.
피해자 아이의 고충을 들어줄 어른이 필요하다면, 이 방법도 고려해 보세요.
참고로 저는 학폭 진행하면서 전문가와의 상담 결과를 첨부하는 절차가 있길래, 교육청 학폭위 통해서 위클래스 상담을 공식 신청했습니다. (필수는 아닌데 하면 좋습니다. 이건 학폭위 절차에 대한 글을 쓰게 되면 그때 자세히 언급할게요)
4. 용서와 화해를 피해자에게 강요하지 마세요. 중요한 건 분리이고, 재발 방지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강요가 대세가 아닌 시대라 믿습니다. 그래서 다행입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용서와 화해를 무척 중요한 덕목으로 앞세웠고, 결국 그 효과는 피해자에게 강요되는 감정의 삭제와 가해자의 면죄부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용서와 화해를 '피해자가 원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사실....저는.....피해자들에게 그런 생각 애초에 접으라 말하고 싶습니다. (대세로 치는 보편적인 가치가 아니어서 죄송합니다만 할 말은 합니다.)
용서와 화해를 통해 '본인이 그렇게도 좋다면' 해야겠지만, 글쎄요. 과연 그렇게 좋을까요?
시간 지나고 나서 이불킥하거나 얹혀 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오히려 '사과 다 받아놓고 몇 년 지나 갑자기 왜 그러냐?'는 적반하장 및 비난의 빌미만 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인생 따로 사는 거고 마이웨이입니다.
더 글로리처럼 복수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서로의 시야에 보이지 않게 (그래서 공식 학폭위가 필요합니다. 반편성이 합법적으로 갈라지니까요) 각자의 삶을 잘 살면 되는 겁니다.
이번 생에서 연이 좋지 않은 건 서로 인정하고, 각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갈라서면 그만입니다.
보호자는 세상에 그지같은 인연보다 좋은 인연이 훨씬 많다는 걸 잘 알려주시고, 그런 인연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됩니다.
진짜 제대로 하는 복수는 가해자보다 잘 사는 겁니다. 실제로 그렇게 된 어른들이 우리 주위에 즐비합니다. (저 역시 따돌림의 피해자로 몇 년을 지냈지만, 지금은 제가 그때 가해자들보다 천배 만배 훌륭하고 즐거운 인생이라 자신합니다. 그들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재발 방지하는 세부 방법은 케이스마다 너무나 다르니 생략합니다.
5. 완전히 잊을 수는 없더라도, 지나간 일을 흐릿하게 지우고 앞으로 더 재미있게 지내는 길을 이끌어 주세요.
적어도 지금 이 글을 보시는 얼룩커 여러분은, 충분히 그런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아, 본인의 자녀한테 그러라는 게 아니에요. 자녀 없는 분들도 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전제 하에 하는 말입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이렇게 고정해 달라는 겁니다.
가해자를 시원하게 비난하는 것도 일면 피해자의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진짜 제삼자 분들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아 물론 정순신 아들은 저도 글마다 꼭 소환해서 활용 중이긴 합니다. 이슈의 핵심인데 어쩌겠습니까....)
그냥, "아, 너 그런 일이 있었어? 지금은 괜찮아? 괜찮다면 다행이다. 그럼 이제 나랑 뭐 하고 놀까?" 이 정도 반응과 함께 긍정적인 눈빛을 주면 되죠.
더 있지만 여기까지만 씁니다. 벌써 5천자군요.
이 글에서 학폭위 절차의 세부사항은 논외로 합니다.
그것도 물론 제목과 결부되는 중요한 키 포인트이자 스킬적인 콘텐츠인 건 맞습니다만
공식 학폭위를 가지 못하더라도 피해자는 피해자이고, 그들의 괴로움은 분명히 뿌리 뽑아야 할 일이니까요. 이번엔 어쩔 수 없이 원론적인 측면을 더 다루어 봤습니다.
초/중/고 재학중인 삼남매를 키우며 화장품 유통 사업과 작은 연구소를 운영 중입니다. 강의와 글 생산 노동을 포기하지 못하여 프로N잡러로 살고 있습니다.
화해를 강조하는 이들 보면 시어머니보다 시누이가 왜 더 얄미운지 알겠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