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과 상상] <로보캅> 정물로 전락하다

허남웅
허남웅 인증된 계정 · 영화평론가
2024/04/26
호세 파딜라 감독의 <로보캅>(2014)은 공식적으로 폴 버호벤 감독이 연출한 <로보캅>(1987)의 리메이크이다. 다만 기본적인 설정은 취하되 원작에서 좀 더 나아간 해석을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롭다.

유능한 경찰이었던 알렉스 머피(조엘 킨나만)가 범인 검거 중 거의 회복이 불가능한 부상을 입고 로보캅이 되는 과정은 두 영화 모두 별반 차이가 없다. 날로 범죄가 증가하는 디트로이트의 범죄율을 경감시키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경찰력이 필요한데 로봇 테크놀로지를 보유한 기업의 이해와 맞아 떨어져 로보캅이 탄생하는 것이다.

근데 폴 버호벤 버전과 다르게 호세 파딜라 감독은 그 과정에서 로보캅을 잘근잘근 해체하는 수준으로 머피의 몸이 어떻게 로봇 수트와 연결되었는지를 충격적으로 제시한다.

인간인가, 기계인가?
치명적인 부상 이후 의식을 회복한 머피는 자신이 로봇 수트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데넷 노튼(게리 올드만) 박사에게 원래의 몸으로 돌려놓아 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에 노튼 박사는 로보캅 수트의 팔, 다리, 몸통 부분을 차례로 분리하니, 남아있는 머피의 실제 육체라는 것은 머리로부터 이어진 기관지와 심장을 감싼 두 개의 폐, 그리고 오른손이 전부다. 이에 머피는 비명을 지르며 좌절하고 마는데 이 광경은 인간의 신체를 정육점의 고깃덩이에 비유해 일련의 작품 활동을 펼쳤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 <벨라스케스가 그린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 초상의 습작>(1953)나 삼단 제단화인 <십자가책형>(1965)에서 보듯 프랜시스 베이컨은 기괴하게 표정이 일그러진 인물이 비명을 지르는 광경이나 가축의 몸처럼 도축 당한 듯 훼손된 인간의 육체를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그림이지만 그것이 주는 인상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사람들은 프랜시스 베이컨을 일러 ‘공포의 화가’라고 명명했을 정도다. 머피의 육체와 로보캅 수트를 분리하는 장면에서 관객이 느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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