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과 박용길, 늦봄과 봄길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4/01/18
제가 취직했던 해였으니 1995년입니다. 한창 더웠던 7월 31일, 한 할머니가 판문점을 거쳐 북에서 남으로 넘어 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북한 사람은 아니고 남한 사람이었습니다. 박용길 장로라는 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전 돌아갔던 통일운동가이자 민주화운동가였던 문익환 목사의 사모님이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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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한 해 전 7월 갑자기 세상을 떠났던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1주기를 맞아 남쪽 정부의 허락 없이 북한을 방문한 뒤 귀환하는 길이었습니다. 판문점 이북 지역에는 한복 곱게 차려 입은 북한 처자들이 운집해서 눈물 흘리며 손을 흔들었고 흰색 옷차림의 박용길 장로는 판문점 북측 지역을 떠나 결연한 표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떼면서 남쪽을 향했습니다. 이미 한국의 공안당국은 사전구속영장을 손에 움켜쥐고서 박용길 장로의 귀환을 벼르고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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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는 감상적 통일론에 동의하지 않고, 그런 섣부른 주장들이 오히려 통일을 더 어렵게 한다고 확신합니다. 박용길 장로가 돌아오던 뒤안길에 서서 “조국 통일” 외치며 눈물 흘리던 북한 여성들이 진실로 통일의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고 믿지도 않습니다. 즉 박용길 장로가 굳이 김일성 주석 1주기에 참석하겠다고 북한을 방문한 일에 찬성하지도 않았고 그리 호감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감옥행이 보장된 남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내려오는 박용길 장로를 보면서 사뭇 묘한 느낌에 휩싸였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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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고인이 되신 분께 외람된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박용길 장로의 그날 모습이 무슨 통일의 어머니라든가 조국 통일의 기수의 행진이라기보다는 평생 한 남자를 사랑했던 한 여성의 당차고 솔직한 행보로 보였거든요. 마치 그 남편에게 뽐내고 있는 듯 보였거든요. 만방에 과시하고 있는 듯 했거든요.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여보 보고 있소? 나 당신 대신 갔다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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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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