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양 된 그릇 입양했더니 받게 된 대접

루시아
루시아 · 전자책 <나를 살게 하는> 출간
2024/02/26

좀, 아니 많이 창피하지만

난 결혼하고 1년도 안 됐을 무렵, 재활용 분리수거장에 누가 내다 놓은 그릇을 주워 집으로 들고 들어온 적이 있다. 당시엔 내 행동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득템 했다는 기쁜 마음에 그냥 좋아서 싱글벙글, 소리만 안 냈지 목구멍까지 '아싸'하는 소리가 올라오려는 걸 참아 누르기까지 했다. 그래도 새것이 아닌 누가 버린 걸 주워 온다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상적인 일은 아니므로 혹시 나를 보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지 없는지 힐끔 둘러봤던 기억이 난다.  

이제 결혼한 지 14년 차이니 13년 전 일이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들이 힘든 시절에 있었던 일이라며 할 법한 옛날 옛적 이야기 같지만 불과 10년이 조금 더 지났을 뿐인.

재활용 분리수거 날이라 베란다에 애초에 분류해 두었던 재활용들을 카트에 담아 배출 장소로 나왔다. 당시 남편 월급이 '헉'소리가 날 만큼 정말 적었다. 남편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지만 단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월급'이었으니까. 다행이라면 그때 난 강남에서 수학 강사로 일할 때였고 지역 특성상 월 수입이 남부럽지 않았으니 남편의 벌이가 적으면 내가 맞벌이하면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결혼을 결심했었다. 하지만 결혼하자마자 바로 아이가 생겼고, 극초반에 하혈로 유산이 염려되어 맞벌이는 물 건너가고 말았다. 겉으로 드러내 불안해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우리 미래는 괜찮을까 하는 생각과 고민을 늘 가지고 있을 때였다. 뱃속에 아이는 자라날 것이고, 친정, 시댁 모두 내가 아이를 낳는다 해서 아이를 대신 돌봐주실 여력도 없었으므로 맞벌이를 언제쯤 할 수 있으려나 한숨만 나왔다.

당장 내가 돈을 벌 수 없으니 최대한 안 쓰는 게 방법이었다. 가끔 재활용을 버리러 나갈 때 분리수거장에서 득템을 하기도 했었다. 코로나도 오기 전이고, 메르스도 있기 전이니 남들이 쓰다 버린 것 뭐 그다지 더럽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이들 책 전집이 나와 있기도 했고, 쓸만한 협탁이 있기도 했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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