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동하는 사랑의 시: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차구마
차구마 · 창작집단 차구마컴퍼니입니다.
2024/05/23
출처: pixabay
사랑을 무엇이라 정의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렇게 어렴풋이 (혹은 다양하게) 정의된 사랑을 완전히 뒤집는 일은 더욱 어렵다. 사랑의 고정된 관념을 뒤집고 깨부수는 작업을 예술적 실험이라고 한다면, 새로운 사랑에 대한 파격적 실험보다 정의된 사랑을 위한 안전한 변주를 선택하는 이들의 수가 압도적인 것은 그러한 까닭이다. 오늘날 우리가 읽는 사랑은 대체로 위아래가 뒤집힌 사랑이 아니라 좌우로 흔들리는 사랑이다.

사랑을 꼬리표로 달고 나오는 저마다의 작업에 큰 감흥을 기대하는 일이 갈수록 줄어들지만, 아름답다 흔쾌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곱게 변주된 사랑의 시들은 여전히 쓰이고 있다. 그런 시들은 평범한 단어를 정갈하게 배치해 사랑의 아름다움을 보편적으로 전달하는 일에 충실하고, 우리는 그 사랑의 시 위에서 좌우로 흔들리며 즐거워한다.

박준의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문학과지성사, 2018)를 읽는다.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 「선잠」 중에서

어느 연인이 있다. 어느 연인은 여느 연인처럼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을 하며 살기를 꿈꾸는 이들이다. 그렇게 특별할 일 없이 같이 먹고, 자고, 노래를 부른다. 굳이 특별하길 바라지 않은 채, 평범한 일상이 잠깐의 꿈처럼 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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