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동하는 사랑의 시: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2024/05/23
사랑을 꼬리표로 달고 나오는 저마다의 작업에 큰 감흥을 기대하는 일이 갈수록 줄어들지만, 아름답다 흔쾌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곱게 변주된 사랑의 시들은 여전히 쓰이고 있다. 그런 시들은 평범한 단어를 정갈하게 배치해 사랑의 아름다움을 보편적으로 전달하는 일에 충실하고, 우리는 그 사랑의 시 위에서 좌우로 흔들리며 즐거워한다.
박준의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문학과지성사, 2018)를 읽는다.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 「선잠」 중에서
어느 연인이 있다. 어느 연인은 여느 연인처럼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을 하며 살기를 꿈꾸는 이들이다. 그렇게 특별할 일 없이 같이 먹고, 자고, 노래를 부른다. 굳이 특별하길 바라지 않은 채, 평범한 일상이 잠깐의 꿈처럼 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