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수제비, 날씨

콩사탕나무
콩사탕나무 ·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
2023/11/07


1. 지난번 내가 주워 온 은행 맛을 본 아이들이 은행을 또 먹고 싶다고 말했다. 마을 어귀에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생각났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과 열매들이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아무도 밟지 않는 곳이다. 주말에 남편과 아이는 냄새나는 열매를 한가득 주워 왔다. 강아지와 산책하던 동네 주민도 그 모습을 보고 함께 주워갔다고 한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애물단지 은행 열매가 쓸모있어지는 순간이다.

이번엔 딱딱한 껍데기만 벗겨 프라이팬에 볶아봤다. 뜨거운 팬 위에서 은행은 탁탁 소리를 냈다. 갈색의 얇은 껍질이 홀랑 벗겨지고 보석 같은 알맹이를 뱉었다. 소금을 살짝 뿌렸더니 짭조름하고 쫀득한 은행구이가 되었다. 독성 때문에 동물들도 기피한다는데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열매를 먹는 유일한 종족이자 특이한 족속이 바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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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천천히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schiz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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