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어로 생각할 때와 외국어로 생각할 때 판단이 달라진다
"사람들이 내가 한국어, 영어, 독어를 할 때 각각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대요."
"한국어를 할 때는 감정의 동요가 큰 편이에요. 그런데 친구가 말하길 프랑스어를 할 때의 나는 굉장히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이 된대요."
"일 때문에 영어로 쓴 이메일로 주고받았는데 나중에 내가 여자인 것을 알고 깜짝 놀라더라. 남자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라."
샘 해밍턴 "(내가 한국어도 잘 하긴 하지만) 모국어인 영어로 말하면 완전히 날아다닌다. 영어로 말할 때는 명MC인 유재석 같다는 평을 듣는다."
나는 서울말 말고 다른 지역의 방언은 구사하지 못하는데, 친구들이 나와 서울말로 대화하다가 고향 친구나 가족의 전화를 받고 갑자기 유창한 지역 방언으로 바꿔 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탄한다.
2개국어까지는 아니더라도 1.5개국어 구사자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사용하는 단어, 톤, 뉘앙스가 전부 바뀌면서 친구의 또다른 페르소나가 느껴진다. 친구들뿐 아니라 방탄소년단의 멤버들이 고향 방언을 쓸 때도 미묘하게 좀 달라 보인다. 더 자유분방하고 거침없고 편안해 보이는 듯하다.
나랑 영어로 천천히 예의 바르게 대화하던 이탈리아인 친구는 가족의 전화를 받는 순간 감정과 높낮이가 풍부한 이탈리아어를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그 대화를 내가 기록한다면 "!! ?? !!!! ? !!!"가 될 듯하다.
무려 73개의 언어를 할 줄 알았다고 전해지는 볼로냐의 추기경 메조판티가 언어를 바꿀 때의 느낌을 묘사한 말은 다음과 같다.
"초록색 안경을 끼고 있는 동안은 세상 모든 것이 초록색으로 보이셨을 겁니다. 제 경우도 딱 그렇습니다. 제가 예를 들어 러시아어를 이야기할 경우, 러시아어의 색안경을 낀 것과 마찬가지여서 제 생각도 오로지 그 언어로만 보입니다. 다른 언어로 넘어가려 한다면, 저는 그저 색안경만 바꾸면 됩니다."
이렇게 이중언어구사자, 다언어구사자들은 코드 전환(code switching)이 일어날 때마다 다른 성격을 갖게 되는 느낌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