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손님과 어머니> : 사회적 관습이 갈라놓은 인연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4/02/02
'미망인' 혹은 '과부' : 여성 혐오가 짙게 베여있는 언어

사람들은 남편과 사별한 여인을 으레 '미망인(未亡人)'이라고 부른다. 주로 공문서에 표기하거나, 격식을 갖춘 자리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깍듯이 예의를 차린 것처럼 느껴지지만, 낱말을 해체해보면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미망인'은 문자 그대로, '남편과 함께 죽었어야 했는데, 죽지 않고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전근대적인 남존여비 사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부'는 어떨까? 사전적인 의미로도, 현시대의 가치 판단 하에서도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또한 썩 좋지 않은 패러다임 속에서 유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과부'는 정절을 지킨 '열녀', '조강지처', '현모양처'의 이미지로 함축된다. 쉽게 말해, 한 남자의 아내, 혹은 아이들의 어머니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했을 때, 얻어지는 결과물이란 얘기다. 게다가, 사별한 여인을 무시하거나, 낮춰 부르는 용도로 사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회적인 인식은 '미망인' 보다 못하다.

우리 어머니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둘도 없이 곱게 생긴 우리 어머니는 금년 나이 스물세 살인데 과부랍니다. 과부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몰라도 하여튼 동리 사람들은 나더러는 '과부의 딸'이라고들 부르니까 우리 어머니가 과부인 줄을 알지요. 남들은 다 아버지가 있는데 나만은 아버지가 없지요. 아버지가 없다고 아마 '과부 딸' 이라나 봐요. -p168~169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화자이자, 여섯 살 난 여자아이 '옥희'는 버젓이 이름이 있음에도, '과부의 딸'로 통한다. 동리 사람들이 '옥희' 모녀에게 악감정을 표출하려고 선택한 표현은 아니겠지만, 듣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편한 말이다. '과부'라는 한 단어로, '한 부모 가정'이라는 차별 의식을 경험하기에 충분한 상황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소한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혐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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