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영웅과 강자를 원하는가

유창선
유창선 인증된 계정 · 칼럼니스트
2024/01/27
 
루쉰, 「고사리를 캔 이야기」 

내 힘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단지 경제적인 자립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에 앞서는 것이 정신적인 자립이다.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 진정한 자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약해지면 기댈 곳을 찾게 된다. 가족, 친구, 어른,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받고 도움도 얻고 싶어한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혼자 살아가는 것이 미덕이 아닌 이상, 그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이 의존할 항상적인 버팀목을 만들어내려 한다. 그래서 영웅이 만들어진다. 


백이와 숙제, 지조의 아이콘이 아닌 무기력한 노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천도(天道)를 거스른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며 서우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먹고 살다 굶어 죽었다는 전설적인 현인들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 「백이열전(伯夷列傳)」에 나온다. 백이와 숙제는 부끄럽게 사느니 굶어 죽기를 택한 지조와 절개의 인물로 수천 년 역사에 전해져 내려왔다.

그런데 루쉰의 『고사신편(故事新編)』에 실린 「고사리를 캔 이야기」에서는 두 사람이 대단히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있다. 백이와 숙제는 양로원에서 지내고 있었다. 둘은 시국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얘기를 나누다가 양로원에서 나오는 구운 전병이 매일매일 작아지는 것을 걱정한다. 형 백이는 동생 숙제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우리는 식객의 몸이다. 서백(西伯)이 늙은이를 봉양하라 했기에 우리가 여기 할 일 없이도 있을 수 있는 거지. 그러니 전병이 작아진다고 해서 불평해서는 안 될뿐더러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해도 아무 말 해서는 안 된다.”
양로원에서 밥을 얻어먹는 신세이니 주는 대로 먹고 아무 불평 없이 지내자는 자조 섞인 얘기로 들린다. 이에 숙제가 “그럼 이제 우리는 여생이나 신경 쓰는 늙은이가 되어버린 거군요”라고 하자, 백이는 “가장 좋은 건 말을 안 하는 거야. 난 이제 그런 얘기 들을 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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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시사평론을 했습니다. 뇌종양 수술을 하고 긴 투병의 시간을 거친 이후로 인생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 문화예술과 인생에 대한 글쓰기도 많이 합니다. 서울신문, 아시아경제,아주경제,시사저널,주간한국, 여성신문,신동아,폴리뉴스에 칼럼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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