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껌이지(Come easy) 3편 : 나는 왜 12년째 독서모임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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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은 · 15년차 집돌이
2022/05/19

90년대의 학교

90년대 중학교 입학을 앞둔 초등 고학년들은 거의 대부분 8종으로 구성된 영어 교과서를 모두 외우고 수학은 중3 과정까지 선행을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기계처럼 한국 문학을 시기별로 외워야 했고 주요 작가 순서대로 근현대 문학작품을 읽고 내용과 의의를 암기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모든 것이 학력고사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었고 하나의 시험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야 했다.

중학 반편성 배치고사 결과를 바탕으로 전교 1등부터 꼴찌까지 순서대로 반에 배정되었다. 반의 1등은 반장, 2등은 부반장이 되었다. 입학할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아이들의 성적은 큰 변동이 없었고 고교 진학 후에도 크게 흔들리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몇몇이 떨어지고 새롭게 등장했지만 부모가 떠민 것도 아니고 본인이 불안해서 하는 공부를 뒤엎을 만큼 획기적인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시험이 끝나면 복도에는 전교 30등까지 이름이 붙었고 순서대로 진학상담을 해야 했던 시절을 보낸 학생들은 고등학교도 대학도 성적에 맞춰 진학했다. 

나중에 그 시험은 갑자기 수학능력 평가라는 생소한 이름의 시험으로 대체되었지만 그럼에도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차피 하나의 시험으로 인생을 판가름하는듯한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능 초창기에 잠깐 1년 2회 시험으로 치러진 적이 있었는데 만약 그때 수능이 1년 동안 7회 볼 수 있는 시험으로 바뀌었더라면 입시 기조는 달라졌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당시의 학생들은 성장했다. 모든 것이 달라진 세상과 입시 체계 안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저갱으로 끌려들어 갈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는 부모가 되었다. 끔찍하게 싫어했던 그 시절의 공부 방식을 여전히 힘들어하면서도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모순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인다.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특별한 재능을 보이지 않는 내 아이들이 살아남으려면 그래도 공부는 해야 하는 것이라며 학원비에 기백만원을 쏟아붓는다. 확실한 생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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