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네스 마틴의 흔적을 찾아, 뉴욕 금융 지구의 '코엔티스 슬립'
“거긴 왜 가려고?”
코엔티스 슬립(Coenties Slip)에 가고 싶다는 말에 상대방으로부터 의아하다는 듯한 반응이 돌아왔다. 6년 여의 시간을 뉴욕에서 보냈던 이도 익숙지 않은 명칭이라 했다. 세계 최대의 금융 지구인 뉴욕 맨하탄 파이낸셜 디스트릭트(Financial District) 내 위치하며 월 스트리트(Wall St)로부터 불과 도보 4분 거리인 곳이지만, 이스트 강의 작은 블록인 이곳이 과거 예술가들의 거주지였단 사실은 과거의 흔적이 대부분 사라진 지금엔 관심을 두지 않으면 알아채기 어렵다.
코엔티스 슬립이라는 명칭을 알게 된 건 뉴욕행 비행기 안에서 읽은 한 권의 책에서였다. 6개월 전 예정해 둔 작년 연말 휴가를 떠나기 며칠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한 책이 하필 1960-70년대에 뉴욕에서 활동했던 미니멀리즘 예술가들이 등장하는 에세이라니.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아닐 수 없다. 지체 없이 기내수하물용 백팩에 넣은 이 책은 비행 동안 나를 온전히 독서에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12시간의 비행 동안 단 한 편의 영화도 보지 않았으며, 불과 서너 시간 취한 수면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 동안 말이다.
<단순한 열망: 미니멀리즘 탐구(The Longing For Less: Living With Minimalism)>를 불현듯 읽고 싶어진 데에는 제본의 우수한 펼침성과 가벼운 무게가 만족스러웠을 뿐 아니라, 제니 오델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펴낸 출판사에서 낸 신간이라는 사실도 한 몫했다. 미국의 작가이자 평론가 카일 차이카가 쓴 이 책은 상업화된 미니멀리즘의 의미를 전복하고, 미니멀리즘의 근원을 찾아가는 에세이이다. 미니멀리즘과 현대음악에 대한 리서치가 필요해 도서관을 방문했었으나, 이 책은 찾고자 의도했던 미니멀리즘과 현대음악에 대한 구체적인 이론을 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때론 (다소 지루한) 이론서보다도 촘촘하게 엮인 다양한 시대적 배경과 장르의 레퍼런스를 통해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는 인문 에세이가 내 고유한 생각의 발단이 되어줄 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