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ction2024: 병원4] 타락

강현수
강현수 · 영화와 冊.
2024/11/27
*이 글은 노트북으로 썼습니다.

사회는 끊임없이 정교해진다. 그리고 타락한다. 유감스럽게도 타락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성장하는 것은 쇄락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예외를 두지 않는 엔트로피 법칙 때문이다. 멸망 즈음에 부활의 조짐이 보일 수는 있다. 예수님이 그리했듯이. 새로운 에너지의 주입이 멸망을 지연한다. 이런 식으로 부활은 몇 번 더 일어날 수도 있지만, 결국 멸망은 운명처럼 제자리를 찾아들게 될 것이다.

타락하는 과정이 재미있다. 명멸은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시간은 명멸 그 자체다. 우리 몸안에서도 명멸을 볼 수 있다. 어제의 세포와 오늘의 세포가 다르다. 세포가 그렇듯 우리도 그렇다. 전체의 부분은 전체를 닮았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크고 작은 문제일 뿐 다 비슷해 보인다. 크레모아가 작은 폭발이라면 빅뱅은 큰 폭발이다. 사고가 여기까지 이르면 재미있는 상상이 머릿속에서 벌어진다. 현 인류의 기술로는 측정 불가능한 수많은 작은 문명들이 크레모아 폭발 과정에서 흥망할지도 모를 일이다.

옷. 옷도 타락한다. 발가벗은 몸에 걸친 옷이 처음에는 보호구 정도의 구실만 하다가 시나브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더니 급기야 하나의 상징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 상징이 바로 상표다. 이름과 차이가 있다. 상표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상표의 세계는 시장을 필연적으로 끼고 돌아간다. 옷이라는 초기 목적에서 분리돼 돌아가는 형이상의 세계는 발전의 극치에서 나타나는 타락의 현장이다. 옷은 구찌를 만들고 구찌 상표가 붙은 변기 커버는 비싸게 팔린다.

자유, 자유도 타락한다. 폭정과 탄압에 저항했던 자유는 교조화를 피할 수 없다. 모든 가치는 도그마가 되는 순간 타락한다. 구찌가 도그마다. 명품이 구찌로 불리우는 것과 구찌가 명품인 것은 논리적으로 동치가 아니다. 자유를 외치는 저 독재자를 보라!

그리고 병원의 타락이 있다.

병원에서 눈과 귀 그리고 언어를 잃은 노인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들은 주변 사람을, 병원 관계자를 아프게 한다. 그들은 연민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분노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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