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속 문장 14 – 밤에 찾아온 또 다른 세계
2023/09/16
“나는 한 해 여름을 세잔과 드가의 몇 폭의 그림과 살았습니다. 그것들은 물론 추상화였지만, 그런 추상성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비유를 나타내고 있으며, 그래서 하나의 도전으로 돋보였습니다. 나는 낮에 한 번도 색깔을 보지 못했지만 색깔과 구성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음영의 농도에서 그것이 세잔의 달빛인지 드가의 밤인지를 기억해내고 판별해낼 수 있었으니까요. 나중엔 도서관에서 예술서적을 몇 권 찾아내어 창틀 밑에 웅크리고 앉아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그것은 유령의 세계와도 같았지만 어쨌든 어엿한 하나의 세계였습니다.”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그늘진 낙원』 중에서 누구도 세잔과 드가의 작품들을 희미한 별빛이 새어 들어오는 어둠 속에서 본 뒤의 글을 발표하지 않았다. 캔버스 위에 만들어진 아주 낮은 굴곡의 세계를, 그 굴곡에 의해 만들어진 음영의 세계를 색깔들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누가 떠올리려 했겠는가?
그건 마치 칠흑의 어둠 속에서 눈에 새겨두었던 카시오페이아와 오리온과 전갈을 환한 대낮의 하늘을 보며 떠올린 글을 누구도 발표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일일지 모른다. 우리의 신념은 어둠과 환함이 만들어가는 변주에 익숙하도록 태어난 눈에게 어느 한쪽을 무시하도록 편협을 강요했던 것이고. 어느 한 쪽의 세계에 대해 청맹과...
@뉴비
아마 우리의 생각과 감정도 사진화된 것들을 기억하고 생각하고, 변주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우린 연속된 무엇이라고 여기고, 연속된 무엇을 딛고 산다고 여기지만,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
탁월한 사진가이자, 해석자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
최근 읽었던 글에서 맹시라는 단어를 들었습니다. 서로 모순인 두 글자가 합해 이상하지만 설득력 있는 단어를 만들어버렸습니다. 눈은 멀었지만 볼 수 있다.
보는 것 자체가 뇌의 일이라는 과학적 관점이지만 세상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타인은 결국 사진인가 봅니다.
저는 가끔 보고싶던 어떤 사람도 시간과 장소를 특정하지 않으면 우연히 만나지지도 않아서
4차원에 살고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ㅎㅎ
최근 읽었던 글에서 맹시라는 단어를 들었습니다. 서로 모순인 두 글자가 합해 이상하지만 설득력 있는 단어를 만들어버렸습니다. 눈은 멀었지만 볼 수 있다.
보는 것 자체가 뇌의 일이라는 과학적 관점이지만 세상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타인은 결국 사진인가 봅니다.
저는 가끔 보고싶던 어떤 사람도 시간과 장소를 특정하지 않으면 우연히 만나지지도 않아서
4차원에 살고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