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파란데 체온은 정상입니다> : 사예의 우울증 일지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09/08

우울의 기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원인을 진단하기 위해 가만히 눈을 감고 과거를 반추해 본다. 정확한 시기를 특정할 순 없지만 일곱 살 이후로 썩 괜찮았던 적이 없다. 열 살 때는 양쪽 엄지손톱이 썩어 들어가기 일보 직전이 될 때까지 물어뜯었고, 열한 살 때는 두 달 간격으로 자다 깨서 발작 증세를 보였다. 열일곱 살 때는 수시로 눈물이 터져 나와 곤욕을 치렀으며, 열아홉 살 때는 멍한 정신으로 거리를 걷다가 대로변으로 뛰어들 뻔했다. 남들이 꽃다운 나이라고 칭하는 스무 살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는 거의 매일 무기력하게 방구석에 처박혀서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상상을 했다.

죽고 싶지만 죽을 용기는 없고 살고 싶지만 이렇게 살기는 싫다며 악다구니치는 날들이 이어졌다. 마음이 무너지자 몸도 망가졌다. 식이 장애와 수면 장애가 일상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어떤 날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고 어떤 날은 물 한 모금도 넘기기 힘들었다. 14시간 이상 자도 피곤한 날이 있는가 하면 2시간 남짓 새우잠을 자도 저절로 눈이 떠지는 날이 있었다. 그러다 불면이면서 과수면인 상태에 빠져 몇 달간 고생하기도 했다. 목이 쉬어 터지도록 울었고, 가끔씩 미친년 발광하듯 웃어젖혔다. 그야말로 하루하루 피 말리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우울증을 방치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대학병원 신경 정신과를 알아봤지만, 선뜻 예약하지 못했다. 형편이 여의치 않아 진료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약물 복용에 대한 두려움도 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평생 눈 뜬 시체처럼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차선책으로 잠에서 깨면 인터넷에 접속해 우울증에 관한 정보를 샅샅이 뒤졌다. 우울증 자가 테스트부터 우울증을 주제로 한 책,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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