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때같은 자식이 사라졌다 - 어린이 유괴 사건(1980~90년대)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3/02/06
1991년 이형호 군의 형이 동생의 장례식에서 영정을 들고 있는 모습. 출처-조선일보
   
#0 태평성대의 역설
   
통계로만 보자면 1980~90년대 우리나라는 살 맛 나는 세상이었다. 3저(低) 호황(저유가, 저금리, 저환율)의 효과로 연 1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경제가 좋았다. 국가 경제 순위는 해마다 쑥쑥 올라갔다. 국민들은 저마다 중산층으로 진입하기를 꿈꾸며 고된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저축에 매진해 기업과 나라 살림도 넉넉해져만 갔다. 과감한 개발과 성장 정책의 수혜를 입은 벼락부자들이 생겨났다. 누구나 성공과 출세를 꿈꾸는 ‘코리안 드림’의 시대였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급속한 성장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이 만만치 않게 드러났다. 누구나 부자가 되기를 바랐지만, 장기간 지속된 저임금 체제 하에서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기도 벅찬 서민들이 많았다. 자본 소득이 노동 소득을 아득하게 뛰어넘어, 출발선이 다른 계층 사이에 차이가 좁혀질 수 없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지표상 드러나는 3저 효과보다 실제적으로는 장기간 저임금 정책을 유지해 서민들이 희생한 결과, 눈에 띄는 국가 경제 발전이 가능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빈부격차에 따른 사회갈등은 점차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사회 불평등 문제가 해소되지 않자, 정당한 노력만으로 역전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반칙’과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사고가 싹텄다. ‘인생은 한방’이라는 한탕주의가 널리 확산되기 시작한 셈이다. 
   
저마다 잠재된 속물적인 욕망들이 범죄로 비화되기도 했다. 상대적 박탈감을 근거로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를 스스로 정당화하고, 약한 상대를 밟고 일어나는 것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태평성대였다는 1980~90년대 우리나라에서 인신매매, 유괴, 조직폭력 사건이 횡행했던 이유이다. 허황된 꿈을...
강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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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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