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책값이 비싸다고 한다

정재이
정재이 · 프리랜서 번역가 겸 작가
2023/07/27
이 글은 책과 관련된 작가의 네 가지 생각과 일화를 모은 글이다.


1.
일전에 출판계 종사자 몇 명이 모여 수다를 떨었다.

우리의 대화는 근황을 묻는 말에서 시작해 앞으로 뭘 하면 좋을지 고민이라는 하소연으로 이어졌는데, 뒤이어 한 선배가 들려준 현타 경험에 현타를 맞고 말았다. PDF 전자책으로 몇억을 벌고 월세를 해결했다는 광고가 판을 쳐서 자료 조사도 해볼 겸 속는 셈 치고 가장 유명하다는 사람의 것을 구매했는데 무척 실망했단다. 조악한 편집에 휘갈겨 쓴 듯한 내용, 쪽 번호 하나 넣어 완성한 페이지 여러 장에 2만 원을 냈단다. 대체 이게 왜 팔린다는 거지. 심지어 해당 작가의 블로그에 이미 발행되어 있는 글을 그러모은 것이라 조금만 수고한다면 무료로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실망스러운 기분이 든 그가 고개를 돌려 쳐다본 것은 얼마 전 자신의 출판사에서 출간한 15,000원짜리 단행본이었다. 북디자이너를 고용하고, 마케터의 열심으로 빚어냈지만 겨우 몇백 권을 팔아낸 책이었다.

몇백 권을 팔 만큼 별로인 책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베테랑 작가가 글을 쓰고 10년 차 편집자가 검수를 맡고 전문 북디자이너가 표지를 맡은 책이 워드 페이지 몇 장에 뒤지고 있다는 것은 책을 팔아 먹고사는 이들에게 무척 실망스러운 한 가지 사실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직접 읽고 살피어 좋은 책을 발견하는 데 시간을 쓰기는 싫고, 필요한 것만 빨리 취하고 싶어 한다는 것.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내가 사랑한 화요일>을 출판하고, <2년 만에 비행기 모드 버튼을 눌렀다>를 쓰고, <완경 선언>을 번역했습니다.
3
팔로워 16
팔로잉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