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ction2024: 10.09]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요? (미완)

강현수
강현수 · 영화와 冊.
2024/10/09
얼마 전 서울의 모 대학에서 신입생을 위한 강연이 있었다. 인문학 교수인 친구가 청탁을 해온 것이었는데 사실은 배려에 가까웠다. 그 마음 씀이 고마웠다. 올해는 유난히 세운이 좋지 않다. 벚꽃이 질 무렵 (교수 친구도 아는) 전처와 이혼을 했고 아이도 빼앗겼다(달리 어떤 표현을 할 수 있을까). 회사 중역이었던 나는 이후 나름 고군분투를 했으나 거울에 비춰진 내 모습은 시름시름 앓고 있었으리라. 회사는 8월 내 생일에 계약 불신임을 통보했다. 3년 전 8월 가족과 함께 했던 생일 파티 잔상이 가뭇하게 떠올랐다. 남산 정상에 있는 호텔 뷔페 창가에 앉아 펼쳐진 서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며 나는 그들보다 더 행복에 겨워했다. 모든 걸 쟁취한 기분이었다. 어린 시절 꿈꾼 탑을 마침내 제 손으로 세운 듯했다. 하지만 그 탑은 모래성이었고 신기루였다. 이 모든 허망이 다 24년 올해에 일어난 일들이다. 

학부 시절에 친한 사이이기도 했다. 더욱이 우리 학교 출신으로 교수가 되기는 쉽지 않은데 그는 우리 학번에서 유일하게 그 직에 도전하고 있었다. 실패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고시 준비와 같은 길이랄까. 그래서인지 내심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평생 공부만 한 친구여서 마흔 가까이 기반이 없었다. 박사 학위를 딸 때까지 힘들어 하는 친구를 위해 나는 종종 술을 사주곤 했다. 나는 친구와의 지적인 대화를 사랑했다. 사회물이 아직 들지 않은 탓에 현실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었으나 그 만큼 더 자유로운 상상과 지성이 결합되어 대화는 더없이 흥미롭게 흘러가곤 했다. 

마침내 친구는 교수가 되었지만 연구비 조달을 위해 뛰어다녀야 했다. 연구비 없는 교수는 연구원을 둘 수 없다. 두더라도 가난한 연구원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겠는가? 연구비는 연구의 양과 질을 보장한다. 독보적인 천재가 아니라면, 교수의 논문의 품질은 연구실 수준에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당시 나는 대기업에서 유능한 부장이었고 그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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