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베다니로 가는 길(14): 애비야! 이사갈 준비해라!]

안순우
안순우 · 시와 소설을 사랑합니다.
2024/05/07

<1>

금촌댁이 부엌에서 저녁 준비로 분주하다. 석유 곤로 위에는 된장국이 끓고 있고 숯불 화로 위 석쇠에는 갈치 토막을 굽고 있다. 고기 냄새에 강아지도 시장했는지 대문 앞에서 제 밥그릇을 달그락 그리며 낑낑대고 있다. 김치성은 지난 장날 읍내 한의원에서 지은 금촌댁 천식약을 달이기 위해서 숯불을 모으고 있다. 마음의 충격으로 생긴 병이니 먼저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약탕기 아래 숯불에 부채질하다가 명호가 부르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후 가족들이 모두 부엌 옆에 달린 큰 방에 모였다. 옻칠한 긴 상이 펼쳐져있고 김치성이 정면에 앉고 그 옆으로 식구들이 빙 둘러앉았다. 식사기도 순서는 김삼열 빼고 온가족들이 모두 돌아가면서 하고 있다. 오늘 저녁은 명호 누이 명희 차례다. 가족들은 모두 머리를 숙이고 있다. 명희의 기도(祈禱)가 시작되었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쁘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그런데 우리 가정에 좋은 일만 있지는 않습니다. 
엄마가 많이 아프거든요! 제발 이 병을 고쳐주세요!.....”라는 대목에 와서는 울먹이고 있다. 한참동안 명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명호도 눈물을 찔끔그리고 있다. 기도 시간이 되면 언제나 김삼열의 마음은 불편했다. 자식들은 주님께 기도하는데 아비라는 사람은 믿음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건너뛰게 된다. 이제 누구도 김삼열의 기도를 기다리지 않았다. 명희의 기도 소리가 끝나고 모두가 “아멘”하는 소리가 들렸다. 금촌댁은 김치성의 옆에 앉아서 금식을 끝내고 보식으로 끓인 흰죽 위에다가 참기름 섞은 간장을 한 숟가락 뿌렸다. 김치성은 간을 한번 보더니 입에 맞는지 죽을 먹기 시작했다. 금촌댁은 곁에서 말없이 앉아서 김치성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지켜보고만 있었다. 금촌댁도 몇일 전부터 금식 중이다. 두 사람이 번갈아가면서 금식하고 있다. 

“명호야! 
요즘도 학교에서나 동네에서 니를 놀리는 애들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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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불멸성과 불가해성을 고민합니다. 가장 존귀하지만 또 가장 부패한 인간 연구에 천착하여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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