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수다 | 엄마의 채식 레시피

마민지
마민지 인증된 계정 · 영화감독, 작가
2023/10/02
프롤로그. 코로나로 누군가를 떠나보낸 당신에게
1화. 엄마의 죽음: 연유, 예감, 시간, 장소
2화. 엄마의 죽음: 준비, 시작, 보관, 기억
2-1화. 돌봄을 둘러싼 우정 그리고 작별 맞이하기
2-2화. 여성 상주 되기
3화. 엄마의 유품들: 엄마가 남긴 유품과 옛 기억
4화. 엄마의 유품들: 유품 속에서 찾은 ‘입양’ 단서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나면 애도의 시간이 시작된다.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지만 한 사람이 차지하고 있던 공간이 오롯이 비어버렸기에 내 삶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 순간은 매번 고통스러웠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삼우제니, 49재니 하는 의례가 쓸데없다고 생각했는데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추모 절차라는 것을 실감했다. 장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거실 벽의 시계를 치우고 그 자리에 영정사진을 걸었다. 삼우제를 지낼 때까지 우리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빠는 엄마가 없는 현실을 잊고 싶다는 듯이 내내 잠을 잤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나는 거실에 홀로 앉아 시간을 보냈다. 며칠간 자리를 비우면 집사를 혼내기 일쑤인 고양이들은 평소와 다른 공기를 느꼈는지 울지 않고 옆에 가만히 앉아 자리를 지켜주었다. 


삼우제를 지내며 엄마, 아빠, 나 이렇게 세 명의 원가족이 오롯이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공식적인 장례 절차가 끝난 것 같았다. 49재까지 최소한의 사회생활만 하며 휴식하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대로 쉴 수가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전화가 올까 봐 꼭 차고 자던 애플워치를 더 이상 끼지 않는데도 새벽 네다섯 시가 되면 화들짝 잠이 깼다. 놀라서 몸을 세우며 벌떡 일어나는 날도 있었다. 병원을 오가는 내내 잠을 잘 자지 못해 정신건강의학과에 갔지만 수면제를 먹고 깊은 잠을 자다가 응급 전화를 못 받으면 그게 더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는 주치의 선생님의 판단으로 잠을 포기한 채 몇 개월의 시간을 보낸 터였다. 약을 한 번에 세 배로 증량했다. 잠은 잘 수 있게 됐지만 하루 종일 몽롱한 상태가 지속됐다. 일상생활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일단 미뤄두었던 잠을 충분히 자기로 했다.    


엄마와 살던 집에 혼자 남겨진 아빠가 걱정되어 부모님 댁에 자주 갔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지는 이미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사이에는 왠지 엄마의 온기가 남아있었다고 한다면 기분 탓인지 이제는 더 이상 그 온기마저 사라진 것 같았다. 나는 성인이 되어 거의 혼자 지내다가 한동안 부모님 댁에서 살았고, 다시 독립해 나온 상태였다. 그 이후로는 부모님 댁에서 잠을 자고 온 적이 없었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는 엄마 침대에서 자주 자고 갔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내가 선택했던 모든 것이 다 후회처럼 남아버렸다. 침대 주변 정리를 시작했는데 혼자 코로나19가 중증 폐렴으로 진행되는 동안 앓았던 흔적투성이였다. 각종 약봉지와 네블라이저(의료용 분무기), 산소포화도 측정기, 마스크, 물컵 등이 놓여 있었다.  


주로 49재 전에 유품을 어느 정도 정리한다는 이야기를 주워듣고는 집 정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집에는 엄마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빠 방을 제외하고는 모든 공간이 엄마 방식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하다못해 랩을 씌우는 모양이나 보관 용기를 쌓아두는 방법까지도 엄마의 규칙이 묻어있었다. 먼저 태울 옷과 버릴 옷을 분류하기로 했다. 엄마가 좋아하던 옷과 자주 입던 옷은 태우기로 했다. 어떤 옷들은 그 옷을 입고 셀카를 찍어 보냈던 엄마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한 벌씩 입어보고 내가 입고 싶은 옷이나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옷은 옷장에 다시 넣어두었다. 옷에서는 엄마 냄새가 나서 좋았다. 슬퍼질 때마다 엄마 냄새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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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를 기반으로 창작활동을 한다. 사회 주변부적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며 문화예술사업을 기획한다. 다큐멘터리 〈버블 패밀리〉(2018), <착지연습(제작중)> 연출, ‘상-여자의 착지술' 프로젝트 기획단, 에세이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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