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떨어지는 자리 (2) ㅡ 죽어야 새로 태어나는

오아영
오아영 인증된 계정 · 갤러리 대표, 전시기획자, 예술감상자
2023/04/05


앙리 마티스,<춤 II> 1910, 260x391cm, 캔버스에 유채, 에르미타주 미술관//연결된 다섯육체들의 모양과 흐름으로부터 전달되어오는 특유의 리듬감 그리고 단순하고 명료한 색채의 조합이 발하는 생동하는 에너지는 내 깊은 곳 생명의 에너지를 약동한다.
끝모르고 떨어지던 자리가 하나 더 기억나. 집 전체에 불 났을 때. 그렇게 다 탔을때. 엄마 돌아가시고나서 딱 4개월 후에 벌어진 일. 역시 천재지변. 대학 졸업 후부터 당시까지 내 존재를 지배하던 마음, 나는 세계적인 예술후원자가 되기위해 큰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 어플을 100개쯤 정교하게 만들면 그중 하나는 터지겠지! 그렇게 프로그래밍을 배웠고, 24시간 카페에서 프로그래밍한답시고 밤 새고 있는데 새벽 3시, 119의 전화를 받은거였다. 갑자기 내 집이 타고있고 여동생이 응급실에 있다니.



여러분 불이 나서 집 좀 타본 사람만 아는 화재현장의 난감함 하나가 뭔지 아시나요? 이거 알아두면 어디서 심오하게 잘난체 좀 할 수 있으니 잘 들어봐요. 화재피해를 겪고난 직후의 가장 큰 문제는 화재 자체보다도 수습하는 일이다. 불 나는 일은 동산(자산)이 다 타버리는 일이기도 한데, 일단 집 전체가 불이 나보고 나면 뭐가 타버려서 아깝고 어쩌고 하는 마음보다 일단 닥친 상황, 이거 어떻게 정리하지 가 가장 큰 문제가 된다. 



이게말야 완전히 몽땅 싹 다 재가 되어버려서 차라리 깔끔하게 폐기물 업체 불러서 처리하면 쉬운데 문제는 애매하게 다 탔을 때다. 모든걸 내손으로 수습해야 한다는 사실. 왜냐면 남은 물건들을 하나하나 직접 들여다보며 의사결정을 해야해서. 그러니까 어떤 물건이 반만 탔다든지 80퍼센트만 탔다든지 하면 여기서부턴 소유자의 의사결정이 필요해진다. 이건 너무나 소중한 엄마 유품인데 이 20퍼센트라도 남길건지. 내가 매우 사랑하던 남자로부터 받았던 편지인데 30퍼센트라도 남길건지 말건지 같은 것들. 게다가 나는...
오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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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아름다움. 이 둘만이 중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삶의 이유이자 내용이자 목적이다. 실은 이들이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살게 만드는 절대적인 두가지라 믿는다. 인간은 제 영혼 한 켠에 고귀한 자리를 품고 있는 존엄한 존재라고 또한 믿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 보이지 않는 자리들을 손에 만져지도록 구체적으로 탁월하게 설명해내는 일로 내 남은 삶은 살아질 예정이다. 부디 나의 이 삶이 어떤 경로로든 나와 마주하는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살아있게 만들 수 있다면.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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