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으려다 계속 읽게 되는 순간- 메타인지가 잘된다는 것: 비판받을 만한 곳에 미리 가 있기

정민경
정민경 · 잡문 쓰는 사람.
2023/09/30
1. 어떤 글에 눈길이 가고, 오래 읽을까. 나의 경우 '메타 인지'가 잘되는 작가의 글을 보면 '조금 더 읽어볼까'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최근 한정현 작가의 '환승인간'이라는 에세이를 읽게 되었다. 책을 고른 이유는 '환승인간' 뒤표지에 쓰여있는 말 때문이었다. 

나 자신과 지내다 보니 하나의 특기 정도는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발견한 특기는 바로 '환승'이다. (...) 내게 다른 이름들은 위안 같은 거였다. 가령, 한정현이 좀 제대로 못 해도 이보나가 나머지를 해내면 되지 않을까. 반대로 경아나 제인이 좀 잘못해도 한정현이 잘 해내면 최악을 면할 수 있다. 

나는 무수한 이름을 만들어냈고 환승을 거듭하며 적어도 그 안에서는 조금 더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나 자신이 많으면 많을수록 한 명이 비대해지지도 않았고, 그러다 보니 숨을 공간이 많아졌다. 이름이 많을수록 숨 쉬기 좋다. 

나 역시 최근에 엄마인 나, 회사원인 나, 아내인 나, 딸인 나,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 등 여러 개 자아로 살면서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낀 경험이 있어서 이 글에 공감이 갔다.

연휴엔 경치 좋은 곳에서 책 읽는 것이 최고. 사진 출처: 본인
2. 뒤표지의 말에 끌려 책을 집어 들게 되었는데 가벼운 에세이를 상상한 것과 달리 프롤로그는 꽤 비장한 내용이었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 속 여성 시인이 프롤로그에 등장하는데 독재정권의 폭력에 피해 화장실에서 살아남은 이야기였다. 그 뒤로도 국가폭력 피해자의 이야기와 그들이 거대한 폭압에 맞서 시를 읽는다는 내용이 써져 있는데 내가 생각한 에세이의 결에 비해 매우 비장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엇, 에세이라서 가벼울 줄 알았는데 꽤 무거운 글이잖아?'라고 주춤한 때였다. (무거운 글을 무조건 피하는 게 아니라, 당시 그 시간엔 가벼운 글을 읽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프롤로그 이후 작가는 "나는 여러모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인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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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은 콘텐츠 이야기 쓰는 기자. 휴직 중 에세이를 쓰고 있다. 무언갈 읽고 있는 상태가 가장 편안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왜 좋아하는지 잘 쓰는 사람이고 싶다. 이메일 min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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