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를 맹신하는 사람들을 멀리 해야 한다고 맹신하는 사람인데, 그것마저 INTP의 특징이라는 친구의 해석을 듣고 나서는 좀 넋을 잃었다. 그렇게 따지면 애초에 그게 틀릴 수는 있는 거냐. 유사과학자의 말을 심드렁하게 듣고 있는데 친구가 "넌 '누워만 있는 독립운동가'"라고 말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어머 씨발,이라 내뱉고 말았다. 모든 걸 하고 싶어 아무 것도 안 하는 나를 그리 정확히 표현하시다뇨. 선생님, 저도 MBTI의 세계로 귀의하겠습니다.
그러니 내가 목동에 있는 국어학원으로 이직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나조차도 나를 믿지 못한 것이다. 설마 지금 열심히 살겠다는 거니? 언제나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괴로워하지만 정말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각오하는 건 생경한 일이라 망설이기만 했다. INTP의 뇌내망상은 이미 인생 전체를 성찰하고 있었다. 나따위가 사교육의 최전선에서 어찌 버티나. 그런 내게 H는 이리 답해주었다.
'견디지 못하는 걸 알게 되는 것도 성과야.'
그래서 침대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다만 내 이직을 가장 주저하게 만든 건 학생들의 존재였다. 은평구에서 함께한 시간이 벌써 5년이었다. 중2때 만난 그들은 어느새 고3이 되었다. 훌륭한 예술가도 위대한 혁명가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내도록 부정했던 내 20대의 절반을, 그들과 함께 했다. 느슨한 내 삶에 긴장감을 부여한 것은 결국 당신들이었다. 물론 나만의 짝사랑이었다 할지라도.
나는 간다. 이별은 쿨했다. 눈물의 송별은 없었다. 그래, 너희들의 생은 내 알 바가 아니니, 애써 자위했으나. 너희에게 나는 곧 잊히겠지만 당신들은 나의 글이 될 것이다. 그정도로만 놓아두기로 했다.
1월 1일이 새직장의 첫 출근날이었다. 출근하느라 버스에서 1시간 이상을 보낸 건 처음이었다. 한강을 지나고 있으니 만 서른 살의 첫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내 30대를 이렇게 시작하게 될 줄 나라고 알았을까. 사교육에 이리 진심이라니, 내 서른이 우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