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 무전유죄 - 지강헌 탈주 사건(1988)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3/02/13
권총으로 인질을 위협한 뒤 창밖의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호소하는 지강헌. 출처-한국일보
 
올림픽 직후 벌어진 희대의 인질극 

서울올림픽 개최의 열기가 채 사그라들기 전인 1988년 10월 15일 새벽 4시 서울시 서대문구 북암파출소(현 북가좌지구대)로 한 중년 남성이 헐레벌떡 뛰어 들었다. 며칠 전 호송 버스에서 탈주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죄수들이 지금 자신의 집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범인들이 깜빡 잠든 틈을 타 탈출했다고 했다. 
   
깜짝 놀란 파출소 당직 순경은 당장 상부에 보고를 했다. 곧 1,000명이 넘는 경찰이 출동해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는 가정집 주택을 이중 삼중으로 포위했다. 날이 밝은 뒤에는 연세대학교가 있는 인근 연희동까지 경찰 병력이 배치됐다. 기자들이 몰려들고, 방송국 카메라가 집 주위로 진을 쳤다. 인질극이 텔레비전 방송에 생중계 되는 희대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https://youtu.be/4qjQnAKVAq0
통제가 되지 않는 사건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경찰과 기자와 주민들이 한데 뒤섞여 난리 북새통을 이뤘다. 당시 경찰에는 인질 사건에 대처하는 매뉴얼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았고, 이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전문 인력 또한 없었다. 경찰은 인질 곁에서 권총을 겨누고 있는 탈주범 지강헌에게 “부모를 생각하라”거나 “먹고 싶은 것 없냐”는 둥의 일차원적 회유만 했을 뿐이다. 나이와 경험이 많은 베테랑 형사가 먼저 설득해보고 안되면 또 다른 형사가 나가 상대하는 식이었다. 
인질극 당시 방송국 카메라와 신문사 기자, 경찰, 구경나온 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던 북가좌동 고씨 집 주변의 골목길. 출처-문화일보
   
컨트롤 타워가 부재했으니 주먹구구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어중이떠중이 모두가 자신...
강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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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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