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을 통제하라', 미치광이가 된 헝가리인과 남작나리가 된 외과의사

곽경훈
곽경훈 인증된 계정 · 작가 겸 의사
2023/02/27
손을 올리지 마세요
처치실은 응급실 한쪽에 자리한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다. 출입구를 제외한 벽에는 모두 수납공간이 있으며 거기에는 수술장갑, 봉합사, 블레이드, 주사바늘, 주사기, 소독포, 주사용수, 멸균증류수 같은 의료물품이 빽빽하고 가지런히 쌓여있다. 중앙에는 상처봉합, 이물질제거, 피하농양절개 같은 간단한 시술을 시행하는 수술대가 있다. 시술을 시행하는 부위에 따라 환자가 수술대에 눕거나 엎드릴 수도 있고 때로는 간이의자에 앉은 채, 팔만 올려놓을 수도 있는데 그날은 후자에 해당했다.

'어린이'의 경계를 넘었으나 아직 '청소년'이라 부르기엔 웬지 모르게 어색한 나이의 환자는 간이의자에 앉아 녹색 소독포가 덮인 수술대에 제법 용감하게 팔을 내밀었다. 물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소한 고통에 불과하며 이 정도는 눈도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는 태도에는 애써 꾸민 분위기가 역력했다. 실제로는 여전히 주사바늘이 무서운 나이여서 곧 닥칠 상황에 머리끝까지 차오른 긴장이 조금씩 배어났다.

"자,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어. 너는 선생님이 무섭겠지만 나도 네가 무섭거든."

긴장을 풀려고 농담을 던졌으나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냉소와 독설, 자기비하가 조금씩 섞인 농담을 즐기는 터라 환자의 또래에게 건넬 꺼리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겸연쩍인 표정으로 수술장갑을 착용했다. 그리고는 수술대 옆에 놓인 봉합세트에서 소독약에 적셔 갈색으로 변한 솜을 집어 환자가 내민 팔에 문질렀다. 상처에 직접 닿으면 통증이 있을 뿐만 아니라 회복을 지연하므로 그 주변만 문지르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환자가 수술대에 올린 팔이 완전히 갈색으로 변하자 주사기를 집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간호사가 능숙한 동작으로 리도카인(lidocaine, 국소마취제)이 담긴 앰플을 개봉했다. 주사바늘이 다른 곳에 닿지않도록 주의하며 주사기에 리도카인을 채웠다.

"마취할 때, 조금 아플 수 있어. 그렇지만 잠깐만 참으면 그후로는 봉합하는 내내 아프지 않을거야....
곽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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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의 메디컬에세이를 쓴 작가 겸 의사입니다. 쓸데없이 딴지걸고 독설을 퍼붓는 취미가 있습니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반항하는 의사들>, <날마다 응급실>,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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