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여 잘 자라> <전선야곡>, 그리고 <이별의 부산정거장>
2023/06/24
<전우여 잘 자라> <전선야곡> <이별의 부산정거장>
예술은 시대를 반영한다. 특히 6.25처럼 전 국토와 민중들에게 괴멸적 피해를 입힌 사건은 수많은 예술 작품들의 원천이 된다. 그 중 사람들의 입에 쉽게 오르내리는 대중가요는 더더욱 그렇다. 6.25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노래는 많지만 <전우여 잘 자라> <전선야곡> <이별의 부산정거장>의 세 노래는 그 랭킹 순위가 결코 5위 밖으로 처지지는 않을 노래들이다. 저마다다른 각도로 6.25를 회상하고 있으며 가락마다 박자마다 6.25 당시의 아픔이 묻어나는 대표적인 노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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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들의 작사 작곡가는 유호와 박시춘 콤비다. 해방 이후 짝이 돼 <신라의 달밤>이나 <비내리는 고모령> 등 히트 가요를 양산했던 이 콤비가 어떻게 이 세 노래를 만들게 됐는지를, 이흔 세 번쩨 6.25의 날 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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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어져 가던 분단의 대지는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으로 화산같이 폭발했다. 수도 서울 사수를 주장하던 정부는 일찌감치 도망쳤고 한강 다리마저 끊었다. 수도 서울과 대다수 서울 시민들은 꼼짝없이 탱크를 앞세운 북한 인민군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작사가 유호의 집은 한강 바로 북쪽 청파동에 있었으나 피난 기회를 놓쳤다. 해방둥이로 여섯 살 된 아들과 갓난 아이를 끌고 피난갈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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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동은 서울역 근처다. 서울역을 목표로 한 미군 공군기의 폭격은 청파동 일대를 참혹하게 삼켜 버렸다. 유호의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의 시신을 뛰어넘으며 돌아온 집, 아내는 허벅지에서 피를 펑펑 흘리고 있었다. 아수라장이었다. 인근에서 병원을 하던 형을 찾아갔지만 형도 대책이 없었다. 어떻게든 서울을 벗어나자는 데 뜻이 모아졌고 다리를 다친 아내와 여섯 살 아이를 어떻게든 끌고 경기도 하남의 기계 유씨 집성촌으로 가기로 했다. 인민군의 험악한 눈초리와...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