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산호
박산호 인증된 계정 · 번역가, 에세이스트, 소설가
2023/05/11

   
   
1. 영어를 공부하면서 충격을 받은 적이 두 번 있다. 첫 번째는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 담임 선생님이 영어 선생님이셨는데. 특유의 차갑고 냉소적인 분위기 때문에 별명이 얼음 마녀였다. 그 선생님의 취미는 아이들을 울리는 것이었는데.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어떤 아이에게 영작을 시킨 후 그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썩소를 날리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참 이상해. 너희같이 영어 실력도 짧으면서 영작하라고 하면 매번 문장을 만들려고 고생이지. 영작을 잘하는 비결을 알려줄까? 원어민이 쓰는 문장을 그대로 외워. 그게 정답이야.”
   
   
그때 우리 모두 충격을 받았다. 아니, 적어도 나는 충격을 받았다. 영작을 잘하려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배운 1형식, 2형식, 3형식과 같은 5형식과 갖가지 문법 지식과 단어를 총동원해 어떻게든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충격은 대학교 3학년 때 뉴질랜드로 어학 연수를 갔을 때였다. 영어 공부를 하나도 안 해서 외국에서 미아가 될까 두려워서 2주 동안 민병철 회화 시리즈를 1권부터 3권까지 달달 외우고 갔다. 원래 5권 시리즈였으나 게을러서 3권까지만 암기하고 갔는데. 놀랍게도 그 3권에서 나온 문장들로도 거기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충격을 받은 건 좀 다른 포인트였는데. 그때까지는 영어를 학교에서 배워서 시험 보는 과목이자 앞으로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기술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에서 생활하면서 영어가 언어라는 너무나 지당한 사실을 온몸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그때까지 영어 공부를 너무 기계적으로 했다는 생각에 좌절했다. 
   
   
얼마 전 황농문 교수의 <몰입>이란 주제의 강의를 듣고, 이런 생각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황 교수는 인간의 기억은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으로 나뉘며, 다시 장기 기억은 외현 기억과 암묵 기억으로 나뉜다고 했다. 외현 기억은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지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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