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당신에게 비싼 사과를

유태하
유태하 · 창작중
2024/03/21
박영숙 도자전에서
방 한쪽 면 천장과 넓이에 맞춰 꽉 들어차게 주문한 책장엔 언제부터 사다 놓았는지 모를 책들이 빼곡하다.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높이에 맞추어 자주 읽는 책, 혹은 새로 산 책이 들어간다. 자주 꺼낼 일 없는 칸에는 길 가다 마음에 들어 산 쓸데 없는 물건들이 놓여있다. 단촐한 물건들의 역할은 추억을 재생하는 스위치이다. 이 날 누구와, 혹은 혼자서, 몇 일 몇 시에 어디를 걷다가 눈에 들어왔는지, 어떤 식의 좋은 기분에 내가 취해 있었는지를 알려 주는 역할이다. 내가 내 안의 마음에서 뱅뱅 돌다가 가끔 혼자 너무 먼 의식까지 달려갔을 때, 현실로 시간을 되감는 태엽이다. 그래서 누구도 개입하지 않는 사적인 공간이 중요하다. 나는 이 방이 없을 때 내 몸 하나에만 영혼을 뉘일 수 있었고, 마음 편히 못 쉬는 몸에 정신이 놓이는 것은 굉장히 괴로운 일이었다. 

  방이 없을 땐 인적 드문 공원이나 조용한 분위기의 카페, 도서관에 자주 갔다. 괴롭고 외로운 시간은 얼마나 느리게 가는지 모른다. 자극 없는 곳에 가더라도 마음 속이 시끄러우면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성에 차게 무언가를 해내기가 힘들고, 낮은 성취감은 자기 전 우울감을 불러 일으킨다. 저물어가는 기분은 눈물과 화를 꼬이게 만든다. 눈 안 가득 고인 눈물이 극적인 기분과 함께 터지려다, 시선 끝에 우연히 계절 꽃이 빛 받아 피어 있으면 그야말로 눈이 부시다. 

 퍼뜩 조현병의 '조현'이 현악기의 줄의 튜닝과 연관되어 있단 걸 떠올린다. 나는 손 끝으로 오락가락 하는 기분의 음을 잡는 상상을 했다. 실제로 감정의 파동이 강할 땐 의지와 상관 없이 기분이 구현화된 음악이 들렸다. 그대로 받아 적으면 작곡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난 그만큼 상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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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이어질 수 있는 사람의 정서적 훈련과 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친족성폭력 트라우마 회복 에세이 <기록토끼>, 첫 글에 게시하는 중입니다. whitepoodlelov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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