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봉 선생님 안녕히
2023/09/18
변희봉 선생님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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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천의 얼굴을 가졌다 하지만 사실 정말로 천의 얼굴을 가진 사람은 드물 겁니다. 자리가 사람 만든다지만 배역이 배우를 만들지는 못합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악역은 있고 가장 그럴듯하게 어울리는 진중한 역할도 있지만 웬만한 배우 치고 그 모두를 ‘체화’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그 드문 가운데 저는 변희봉이라는 배우를 내심 검지 아니면 엄지 손가락으로 꼽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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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고 생각한 건 조선왕조 500년 <설중매> 편의 유자광역이었습니다. 덥수룩한 수염을 붙이고 “이 손안에 있소이다.”를 쉰 바리톤으로 내뱉던 모습은 깊이 기억에 남습니다. 실제 유자광이라는 인물은 매우 복잡한 인물이었지요. 서자로 태어났으나 기량과 지모는 출중했고, 살아남기 위하여라기보다는 더 높이 오르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을 해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엄청난 손가락질을 감당해야 했고, 무오사화의 뒷배이면서도 중종반정의 꾀주머니로 영입(?)됐으니 말입니다. <설중매>의 주인공은 인수대비였지만 유자광을 주인공으로 해도 충분히 그 시대를 엮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 유자광 역을 떠올리건대 변희봉 배우 외의 얼굴이 잘 겹쳐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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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마도 변희봉 선생님을 처음 뵈었던 건 <설중매>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자제분들이 “이빠는 그런 역 안하면 안되냐” 하며 울먹이게 했던 드라마 <수사반장>의 잡범들로도 뵈었을 테지만 선생님의 필모그래피를 새삼 훑다가 저는 무릎을 크게 한 번 쳤습니다. 달갑지 않은 문화부장관으로 돌아온 유인촌이 광기 어린 연기를 선보이며 사도세자로 현신했던 드라마 <안국동 아씨>에 나왔던 유별난 점쟁이, 이 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늘어지는 말투를 벤치마킹(?)했던 그 유들유들한 박수무당이 선생님 아니었겠습니까. 드라마 <제1공화국>에서 이승만 역을 맡은 최불암의 말투를 들으며 “어 저건 ...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한국에서 참 드물고 귀한 중견 연기자의 대들보역할을 하셨던 분이시지요. 대본 연습할때면 늘 무게 중심을 잡으시던 모습을 잊지.못할겝니다. 비록 몇작품 같이 못했지만 위대하지만 인간적이고 소박했던 배우 변희봉 선생님으로 기억에 남을 겝니다. 산하님.글은 늘 묵직허니 속청수 하나 까야 것습네다. 먼저 가 겨셔요, 선생님 곧 따라.가것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말 정성이 담긴 글이네요. 변희봉 선생님은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