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 복음소 시절의 염상섭과 콧대높은 이광수
2023/11/02
요코하마 복음소 시절의 염상섭과 콧대높은 이광수
요코하마 복음 인쇄소는 일본에서 한글 활자를 가지고 있는 오직 하나밖에 없던 인쇄소였다. 여기서는 주로 조선에 공급하는 한글 복음서를 인쇄하였다. 여기서 조선 유학생들의 기관지 <학지광>, 문학 동인지 <창조>, 종합지 <현대> 등도 인쇄되었다. 염상섭은 인쇄 직공 생활을 통하여 노동자의 삶을 터득하고 그 속에서 투쟁 의식을 키우는 한편, 학자금도 벌고자 했지만 인쇄 직공 생활 3개월 만에 독감이 걸려 눕게 되었다.
염상섭은 <학지광>, <창조>, <현대>, <삼광> 등을 통하여 문학 동인 또는 유학생들의 글을 접하면서 “나도 이제는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염상섭은 그 동안 못했던 글쓰기에 전념하여 실로 많은 습작을 했다.
요코야마 복음 인쇄소에서 쓴 그의 유일한 시 「법의」(1920)를 비롯하여 「삼광송」(1919), 「이중해방」(1919), 「舶來猫」(1919), 「상아탑형께」(1919), 첫 소설 「암야」(1919) 등이 이해 겨울 3개월 동안 염상섭의 습작품이다. 1920년 1월 요코하마 복음 인쇄소에서 쓴 「법의」는 염상섭의 유일한 시다. 이 시에는 노동자의 수척한 모습과 신부와 승녀의 찬란함이 대조되어 있다. 이는 진실과 허위에 대한 염상섭의 반동적 표현이었다.
염상섭의 습작들은 병고에 시달리며 씌어졌다. 당시 동경 유학생들에게...
@살구꽃 선배 이광수의 자존심도 대단했지만, 후배 염상섭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죠.
와, 당시에 염상섭의 발언에 얼마나 쇼킹했을까요.
@살구꽃 선배 이광수의 자존심도 대단했지만, 후배 염상섭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죠.
와, 당시에 염상섭의 발언에 얼마나 쇼킹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