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시어머니에게 가르쳐주고 싶지 않은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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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ist96 · 호기심 많은 기후생태활동가이자 한의사
2023/02/09
내가 맡은 제네바시민대학의 한국어반에는 대학(원)생, 주부, 화이트칼라 노동자 등도 있지만, 블루칼라 노동자들, 무직 상태인 사람들도 있다. 봉제공장에 다니는 학생, 공항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학생, 20대 초반의 싱글맘인 학생.. 한국이라면 굉장히 삶이 빠듯하여 일하고 재충전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 계층의 사람들도 시민대학의 강의를 들으러 온다. 예컨대 한국의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취미로 그리스어를 배우러 다닐 만한 여유가 있을까?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스위스에서는 생계, 진학, 취직, 승진 등과 무관한 한국어를 취미로 배우러 올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는 것이다. 블루칼라 노동자도 돈을 모아 꿈에 그리던 한국에 몇 주, 길면 몇 달 동안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제네바 깡똥(canton, 주州)의 최저임금은 현재 시간당 23스위스프랑, 한국 돈 29000원 정도에 해당한다. 한국사회에서 평가절하되어 있는 노동의 가치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한국인의 성명임이 분명한 이름이 등록되어 있길래, 대체 왜 한국어 입문 수업을 들으러 올까 궁금했다. 한 프랑스인 친구가 아마 한국 출신 입양인일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아, 그런 경우가 있겠구나. 
   
한국 출신 입양인들의 역사는 벌써 65년이나 되었고, 그 인원은 약 20만 명으로 추정된다. 한국전쟁과 그 이후 시기는 그렇다 치고,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국제 원조를 받는 나라(受援國)에서 주는 나라(供與國)로 변신한 뒤로도 여전히 해외로 입양을 보내고 있다. 심지어 출생아가 부족하다고 걱정하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입양된 후에 한국어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희미한 흔적은 남아 있지 않을까?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3~8세에 프랑스어를 쓰는 가정으로 입양된 한국 출신 성인들은 한국어를 완전히 잊었다고 한다. 그들의 뇌에는 한국어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만 8세까지 한국어를 쓴 경우에도 무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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