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산책에 어울리는 영화들

김중혁
김중혁 인증된 계정 · 소설가, 계절에 대해 씁니다.
2024/04/05
photo by 김중혁
오래 전 술버릇 중 하나가 무작정 걷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택시비가 없어서 걷기 시작했는데, 음주 보행에 재미를 붙이다보니 나중에는 수중에 돈이 있어도 무조건 걸었다. 술을 먹고 걷다보면 술이 깬다는 (이것이 과연 장점인지는 모르겠지만) 장점도 있고 평소에 보지 못하는 새벽의 풍경도 만끽할 수 있었다. 산뜻한 공기를 해장국 삼아 들이마시면 온몸의 술기운이 이슬로 변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순간이 하나 있다. 문제의 그날도 나는 강남 어딘가에서 술을 마신 후 무려 3시간을 걸어 한강 다리를 건넜다. 목이 말랐다. 요즘처럼 편의점이 많은 시절도 아니었기 때문에 새벽에 문을 연 가게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물이 필요할 때는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수돗가를 자주 이용했는데, 그날은 학교를 찾아내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교회 하나를 발견했다. 예배당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새벽 기도를 시작할 시간은 아니었다. 나는 교회 앞마당의 사과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큼지막한 사과 하나를 따서 옷에 문질러 닦은 다음 한입 크게 베어 먹었다. 과즙이 사방으로 퍼졌고, 갈증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그래서 네가 아담이라도 됐다는 거야? 사과가 상징하는 게 뭐야? 뱀은 어디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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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 문서, Pages, Obsidian, Ulysses, Scrivener 등의 어플을 사용하고 로지텍, 리얼포스, Nuphy 키보드로 글을 쓴다. 글을 쓸 때는 음악을 듣는데 최근 가장 자주 들었던 음악은 실리카겔, 프롬, 라나 델 레이, 빌 에반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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