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을 돌보다6]아프면 무조건 서울로 가야지

소요 · 돌보는 사람을 위한 돌봄 연구소
2024/02/20
엄마가 아프다. 계단에서 떨어진 지 한 달 만에 뇌출혈(만성경막하뇌출혈-외상 후 뒤늦게 서서히 경막 아래에서 발생한 뇌출혈)이 발생하여 응급실로 가고 있다는 아빠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그 병원으로 갔다. 일요일이어서 당장 수술이 안 되고, 월요일 오전에 담당의사가 출근해서 살펴보고 수술을 결정한다고 했다.

살면서 딱히 병원에 갈 일이 없어서 병원에 대해서 무지한 나는 공황 상태에 가까웠다. 많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아무 생각도 정리할 수 없었다. 여기 지방병원에서 수술을 받아도 되는지, 소위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가야 하는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은 응급실에서도 죽 치고 기다리고 바로 수술도 할 수 없어서 다른 병원을 전전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입원이나 수술을 빨리 하려면 의사가 아니더라도 병원과 관련하여 줄을 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들었던 기억이 났다. 없다. 우리 집안에는 의료인이. 이래서 대한민국이 의사 의사 하나보다. 평소 연락도 안 하던 외사촌 동생 부부가 의사라는 이유로 염치 불구하고 전화를 걸어 상의를 해보았지만 뾰족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어떤 병인지, 어떤 상황인지 몰랐기 때문에 이렇다 할 조언을 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최종 결정은 보호자들의 몫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밤을 새웠다. 면담 전 동생과 나는 막연히 서울로 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담당의사를 만났다. 동생과 나는 면담을 통해서 이 병원에서 빠르게 수술을 받는 쪽을 선택했다. 30분 넘게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이 믿음직스러웠다. 외상으로 인한 만성경막하뇌출혈, 그리고 천공배액술은 신경외과 수술 중에서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에 속하고(맹장수술보다도 쉬운, 신경외과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수술이라고 했다), 빠르게 수술하면 예후도 좋은 편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우리는 그 말을 신뢰했고, 담당의사에게 최대한 존중의 뜻을 담아 선생님을 믿고 여기에서 수술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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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씁니다. 죽을 거 같아서 쓰고, 살기 위해 씁니다. 예전엔 딸을, 지금은 엄마를 돌봅니다. 돌보는 사람을 위한 돌봄을 연구합니다. 잘 사는 기술과 잘 죽는 기술을 개발하고, 어쩌다 지방소멸도시를 탐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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