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조각] "두 교황(The Two Popes)"

김석희
김석희 인증된 계정 · 아티스트, 번역가, 연구자
2023/12/29
[ 영화 한 조각] 

'둘'의 의미
“옛날, 옛날에 한 소녀가 살았습니다”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대체로 그 소녀는 구체적인 한 사람이라기보다는 불특정 다수를 대표하는 하나의 표상이다. 콩쥐든 빨간 두건이든 이 세상 모든 소녀들의 어떤 속성을 대표하는 것이다. ‘한(a)’이라는 관사는 그렇게 정해지지 않은 누군가를 지칭하곤 한다. 
읽은 지 오래되어 줄거리조차 가물가물한 디킨즈 <두 도시 이야기>. ‘두 도시’란 프랑스 혁명이 불처럼 번지던 시기의 뜨겁고도 긴박했던 파리와 소박하고 안정적인 런던이다. 두 도시의 모습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영화 <두 교황>에서 성(聖)의 도시 바티칸과 전화에 휩싸인 세속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대조를 이루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둘'은 그 바탕이 같을지라도 서로 간에 다른 점이 강조되는 관계다. '둘'이란 '타자'를 만드는 관계인 동시에 '자아'가 발현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교황’이라는 제목은 영화 속의 그 모든 콘트라스트를 전제로 한 것일 수밖에 없다. 
탱고와 라틴음악, 아바와 차라 레안더의 노래, 청혼과 신의 부름, 보수와 개혁 같은 대조적인 요소들이 크로스 되는 장면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콘트라스트는 역시 ‘두 교황’, 라칭거(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고르골리오(교황 프란치스코)라는 인물이다. 굳이 두 교황 성하의 이름을 주어로 하는 것은, 나는 이 영화를 성직자가 아닌 두 ‘휴먼’의 아름다운 우정과 고백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교황의 여름 별장에서 라칭거가 피아노를 치고 고르골리오가 듣는 장면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보수의 상징인 라칭거와 개혁의 상징인 고르골리오가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라칭거가 스캔들에 휘말려 급히 바티칸으로 돌아갔을 때 세속적인 의미에서는 정적일 수 있는 고르골리오가 교황의 평화로운 말년을 위해 기도하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이른바 ‘보수’를 무조건 적폐로 몰거나, 이른바 ‘개혁’을 물정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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