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건의 일기, 조선 가정사를 담다. (1) : 이문건-김돈이의 ‘부부의 세계’

박영서
박영서 인증된 계정 · 울고 웃는 조선사 유니버스
2023/04/10
이문건-김돈이 부부의 묘에서 출토된 철릭(문화재청)
고등학생 때 야자 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요. 그때 부부 싸움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다들, ‘도대체 왜 싸우는지 이해가 안 간다.’, ‘싸우려면 우리 없는 데서 싸우든가.’라는 이야기로 합의했죠. 세월이 흘러 그 친구들도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 역시 부부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더군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조선에도 부부 싸움이 있었을까요? 있었다면, 어떤 방식으로 싸웠을까요? 그런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사료가 있습니다. 이문건(李文楗, 1494~1567)의 『묵재일기(默齋日記)』입니다. 이문건은 일기를 쓰면서 먹고 사는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기록했는데요. 조선전기, 때로는 유치하고 때로는 섬뜩한 조선의 부부 싸움 또한 이 일기에서 선명히 드러납니다.
   
이문건은 중종 재위기에 관직 탄탄대로를 걷던 사대부입니다. 그런데 그의 족친인 이휘(李輝)가 조작된 증거로 역모에 걸렸으니, 바로 을사사화(乙巳士禍)였죠. 그로 인해 이문건 역시 경상도 성주로 유배를 가는데요. 당쟁에 휘말린 억울한 유배라는 점이 인정되어, 그의 유배 생활은 ‘유배인 듯 유배 아닌 유배 같은 유배’였습니다. 전직 고위관료였고 여전히 정계에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점을 이용해 성주의 지하경제를 주무르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거든요. 성주의 사대부는 물론, 심지어 성주 현감까지도 그에게 협조를 구해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즉, 성주의 ‘인싸’였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인싸니까 술을 자주 마시러 다녔는데요. 여느 때처럼 숙소에서 외박하고 돌아오니, 아내가 눈을 부릅뜬 사천왕의 기세로 그에게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1552년 10월 5일 ~ 6일 - 『묵재일기(默齋日記)』
   
어젯밤, 아내가 해인사 숙소에서의 일을 자세히 물었다. 기생이 곁에 있었다고 대답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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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를 유영하는 역사교양서 작가, 박영서입니다.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을 썼으며, 딴지일보에서 2016년부터 역사, 문화재, 불교, 축구 관련 기사를 써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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