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를 좋아했는데

오아영
오아영 인증된 계정 · 갤러리 대표, 전시기획자, 예술감상자
2023/02/07

내 거실에 붙여놓은, 잭 베트리아노의 포스터

내가 마지막으로 데이트했던 남자는 봉황 같았다. 
좀 기계적인 얘기지만 그는 뭐랄까, 소위 여자들이 "내 이상형은 말이야 ~"하고 좋은 것들을 제약없이 잔뜩 가져다 붙일 때 "정신 차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하고 핀잔을 듣기 딱 좋은, 그 수식들 여러가지를 겹겹이 동시에 만족시키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남자였다. 그러니까 뭐 이런거지. 이렇게까지 잘생긴 남자가 이렇게까지 체격이 근사할 일이며 이렇게까지 똑똑한데 이렇게까지 사업을 잘한다고? 운전대를 잡은 그의 옆선을 볼 적마다 나는 생각했었다. 너는 왜 배우가 되지 않았니.  



당연히 인간은 정량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혹은 보편적으로 좋은것으로 인정되는 무언가들만으로는 사랑에 빠지기 어려운 존재고 보다 극단적으로 그러해서 자주 곤란함을 겪는 편인 나로선 그가 사랑스럽다기보다 궁금했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이 희귀한 특수종족에 대한 호기심이 컸어.  

나는 그가 자체로 신기했다. 와 이런 남자가 실제로 존재하기도 하는구나. 이 조합이 가능할 수도 있구나. 이러이러이러이러한 조합을 가진 애는 이럴 때 이런 말을 이런 행동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는. 


나보다 오빠이고, 또한 키차이가 20센티도 더 나는 그는, 마치 마음 먹은 듯 눈하나 깜짝 안하고 나를 꼬맹이처럼 대했다. 나는 은근히 괘씸해서 그리고 지기싫어서 한편으론 새롭고 재밌기도 해서 그를 또한 애처럼 대했어. 이렇게 대놓고 잘난 남자는 기분대로 막대해도 본능적으로 좀 안미안하기도 하고. 너 이제까지 많이 떠받들어졌을 거 아냐. 

서로 제 안에 품은 다정함은 꽁꽁 가둬버리고 통통 핑퐁하던 그와의 대화 시간은 정교하게 다층적이고 언어유희적인, 두뇌가 치열하게 튀겨지는 시간에 가까웠다. 매혹적인 게임처럼. 퉁명스런 옷을 입은 우리 대화는 치밀하고 첨예하게 맞물리며 앞서고 뒤서고 회전하고 기울며 함께 오르내렸지. 밀착해서 진행하는 검술...
오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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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아름다움. 이 둘만이 중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삶의 이유이자 내용이자 목적이다. 실은 이들이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살게 만드는 절대적인 두가지라 믿는다. 인간은 제 영혼 한 켠에 고귀한 자리를 품고 있는 존엄한 존재라고 또한 믿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 보이지 않는 자리들을 손에 만져지도록 구체적으로 탁월하게 설명해내는 일로 내 남은 삶은 살아질 예정이다. 부디 나의 이 삶이 어떤 경로로든 나와 마주하는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살아있게 만들 수 있다면.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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