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베다니로 가는 길(4)> : 그 날의 악몽(惡夢)

안순우
안순우 · 시와 소설을 사랑합니다.
2024/05/01


<1>
하늘은 중복(中伏)이 지나면서 점점 더 짙은 코발트 빛을 띄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높이 솟아오른 흰 뭉개 구름과 검은 뭉개구름이 기괴한 짐승의 형상을 하고 서로 싸우는 듯이 뒤엉켜 있다. 삼복의 뜨거운 땡볕이 두려웠는지 하늘에는 새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았다. 읍내 지서(支署) 뒤 언덕에는 밑동이 불에 시커멓게 그슬린 늙은 느티나무 한그루가 웅크리고 있다. 그 아래는 갈색 느티나무 껍질이 얇은 종이 짝처럼 땅바닥에 이리저리로 뒹굴고 있다. 

사람 키 높이에 박혀있는 썩은 옹이에는 어른 주먹만 한 구멍이 하나 뚫려있다. 그런데 그 속에서 뭔가 시커먼 게 꿈틀대고 있다. 잠시 후 시커먼 먹구렁이 한마리가 대가리를 내밀고 혀를 날름거리며 천천히 기어 나온다. 지척의 거리에는 산비둘기 한마리가 더위를 피해서 나무 가지에 앉아 “구국구... 구국구”하며 울고 있다. 햇빛에 검은 비늘을 번쩍이는 구렁이는 대가리를 낮추고 미끄러지듯 소리 없이 비둘기에게 다가갔다. 비둘기는 그제야 뭔가 불안한 느낌이 왔는지 울음을 그치고 작은 머리를 두리번거렸다. 순간 구렁이는 재빨리 아가리를 벌리고 비둘기의 무지개빛 모가지를 물었다. 비둘기는 날개를 푸덕거리면서 허공중에 노란 다리를 휘젓고 있다. 구렁이는 비둘기를 물고서 다시 어두운 구멍 속으로 천천히 기어들어갔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피묻은 비둘기의 깃털이 점점이 떨어져 있다.   

신작로를 따라서 줄지어 서있는 미루나무에 붙어있는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늦여름 땡볕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오늘은 읍내 장날도 아닌 무싯날인데 사람들이 각 동리에서 모여들고 있다. 지서 앞마당에는 벌써 사람들이 발 디딜 틈도 없었다. 포승줄에 묶인 사십 여명의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줄을 맞춰서 앉아있다. 그 뒤에는 카빈총을 든 헌병들이 얼굴을 가리려고 철모를 깊이 눌러쓰고서 군중들을 가로 막고 있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포승줄에 묶인 사람들 가운데서도 흐느끼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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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불멸성과 불가해성을 고민합니다. 가장 존귀하지만 또 가장 부패한 인간 연구에 천착하여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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