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병'이 정말 존재할까? 조현병은 과연 실재할까?

곽경훈
곽경훈 인증된 계정 · 작가 겸 의사
2023/02/01
'마음의 병'이 정말 존재할까? 조현병은 과연 실재할까?

1.
L은 매우 빨랐다. '의사축구팀'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적인 '조기축구팀'의 기준으로 평가해도 엄청나게 빠른 측면공격수였다. 단순히 달음박질하는 능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드리볼도 훌륭했고 거친 선수가 가득한 수비진과 마주하면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미꾸라지처럼 파고들어 빠져나가는 솜씨도 빼어났다. 외모도 그런 실력에 어울렸다. 평균보다 조금 마른 키에 군살을 전혀 찾을 수 없을 만큼 말랐지만 '작다' 혹은 '약하다' 같은 표현 대신 '강인하다'는 단어가 떠올랐고 짧은 머리카락이 어울리는 갸름한 얼굴이었다. 또,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말솜씨와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는 사교성도 지녔다.  

그런데 어느날, 의사축구팀 내부에서 L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퍼졌다. 그가 갑작스레 비싼 스포츠카를 할부로 구매하고 주말마다 백화점에 들려 명품을 수집한다고 했다. L이 당시 공중보건의사로 북무하던 것을 감안하면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소비였다. 오랫동안 뭍혀있던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 L이 '재벌 3세'로 밝혀진 상황이 아니고서는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급기야 L이 강원랜드에서 하룻밤에 천만원 넘는 돈을 날렸다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그래서 우리는 L이 조울증(Bipolar disorder)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축구동호회가 아니라 '의사축구팀'인 만큼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스포츠카를 계약하고 명품을 구매하며 카드를 한도가지 사용한 후에는 제 2금융권의 대출까지 당겨와서 소비에 집착하는 것, 도박과 경마 같은 사행성 취미에 갑작스레 엄청난 돈을 사용하는 것, 모두 조울증 환자가 조증일 때 보이는 전형적인 증상이다. 시간이 흐르자 L도 의사인 터라 자신의 이상한 변화를 깨달았다. 그도 자신에게 조울증이 발병했다고 판단해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L의 병명은 조울증이 아니었다. L이 걸린 질환은 아예 정신과에 해당하지 않았다. L이 걸린 질환은 갑상선기능항진증(hypert...
곽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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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의 메디컬에세이를 쓴 작가 겸 의사입니다. 쓸데없이 딴지걸고 독설을 퍼붓는 취미가 있습니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반항하는 의사들>, <날마다 응급실>,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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