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혜
2023/12/12
alookso 엄지혜
특별한 이야기를 나눈 것 같진 않지만, 또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것, 조용히 말하고, ‘나 오늘 이런 말 꼭 해야 해!’같은 강박이 없는 사람입니다. 작가든 연예인이든 셀럽이든 이들이 인터뷰에 응할 때는 모두 목적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알릴 일이 생겼다는 거죠 ‘인터뷰’는 필요에 의한 만남입니다. 그래서 인터뷰어는 인터뷰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듣고, 그 다음에는 독자들이 궁금해 할 만한 것을 물어야 하고, 마지막 순서로 인터뷰어인 내가 궁금한 것들을 물어봐야 합니다.
 
루시드폴을 처음 만난 건, 2017년입니다. 정규 8집 앨범이 담긴 에세이 『모든 삶은, 작고 크다』를 펴냈을 때였는데요. 인터뷰 장소였던 서울 강남 신사동 카페는 몹시 시끄러웠습니다. 도대체 서로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죠. 저는 망설이기 시작했습니다. 자리를 옮기자고 해볼까? 혹시 싫어하면 어떡하지? 인터뷰어는 대개 소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고요? 소심한 사람은 눈치를 잘 보거든요. 눈치를 잘 보는 사람은 상대의 입장에서 많이 생각하기 때문에 내 의견을 주장하기보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편합니다) 루시드폴은 제 마음을 읽었는지 조용한 테이블로 옮기자고 말했습니다. (아마 폴도 카페가 너무 시끄러워 질문이 잘 안 들렸던 것 같아요) 
 
오랫동안 루시드폴 음악을 들어왔습니다. 운전할 때 루시드폴 노래를 틀어 놓으면, 남편은 졸리다고 구시렁대지만 저는 조용조용하고 속삭이는 듯한 노래를 좋아합니다. 『모든 삶은, 작고 크다』 인터뷰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바로 이 말이었어요.
 
“저는 천천히 느릿느릿 살고 싶진 않아요. 제 속도로 살고 싶어요. 매일매일 바쁘고 치열하고 촘촘하다고 해도 그게 나랑 맞는 속도면 별 문제가 없을 거예요. 서울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살고 싶은 속도를 내가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내가 기어를 쥐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았어요. 굉장히 많은 관계가 있으니까 내가 그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어요. 내 속도로 살기 위해서는 이 관계들 속에서 떨어져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적어도 핸들은 내가 쥐고 있어야겠다, 생각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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